1심 특수절도 혐의 무죄 나오자
‘절도 방조’로 혐의 바꿔 또 기소
“이게 기소거리 되나” 2심도 무죄
제주지방법원 법정. 뉴스1
“여기(법원)라면 끔찍해요. 1년 6개월 넘게 잠도 못 자고, 먹지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검찰이 상고할까 봐 무서워요.”
12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만난 김모 씨(50대·여성)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관절과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김 씨는 이른바 ‘3만 원 옷 절도 사건’으로 기소됐지만,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초코파이 절도 사건’과 맞물려, 소액 절도 사건을 둘러싼 검찰의 기계적인 수사·기소 관행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제주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오창훈 부장판사)는 이날 절도 방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당초 김 씨를 특수절도 혐의로 기소했으나,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항소심에서 혐의를 절도 방조로 변경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해 6월 27일 낮 12시 44분경 제주 서귀포시의 한 옷가게에서 지인 박모 씨가 3만 원 상당의 옷 6벌을 훔칠 당시, 옷을 숨길 검은색 비닐봉지를 건네고 주변에서 망을 본 혐의를 받았다. 하지관절과 지적 장애를 앓고 있던 박 씨는 같은 해 6월 4일 사망해 공소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검은색 비닐봉지에는 박 씨의 약봉지가 들어 있었다”며 “당시 박 씨가 약봉지를 달라고 해서 줬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박 씨 역시 생전 경찰 조사에서 “신경안정제를 너무 많이 먹어 옷을 훔친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을 뿐, 김 씨와 범행을 공모했다는 취지의 진술은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1심 재판부는 “김 씨가 박 씨의 요구로 약봉지를 건네줬다는 사정만으로 범행을 공모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심지어 김 씨가 훔친 옷을 나눠 가졌다거나 그 범행으로 이익을 취했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지난달 21일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서 오 부장판사는 “이게 기소 거리가 되겠나”, “3만 원 사건이 무죄가 나왔다고 이걸 항소심까지 해야 하느냐”며 검찰의 기소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도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 부장판사는 “검찰에서 제시한 CCTV 영상을 보면 김 씨가 매장 안을 바라보긴 했지만, 박 씨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며 “김 씨가 박 씨의 범행을 알았더라도 친한 지인인 데다 장애를 앓고 있어 범행을 중단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을 마친 뒤 김 씨는 본보와 만나 “1심 무죄가 나올 때도 항소할까 봐 조마조마했다”며 “검찰에서 상고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전북 완주군의 한 제조회사에서 초코파이 등 1050원어치 간식을 훔쳐 먹은 혐의로 기소된 40대 보안업체 직원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검찰의 무리한 소액 절도 기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대검찰청은 지난달 30일 형사 처벌 필요성이 크지 않고 범행 동기에 참작 사유가 있는 경미한 사안에 대해서는 기소하지 않도록 내부 지침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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