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진 지난해 11월 14일 수험생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현직 교사 최소 249명이 대형 입시학원과 유명 강사로부터 돈을 받고 수능 및 모의고사 예상문제를 만들어 판매한 ‘사교육 카르텔’이 감사원 감사로 드러났다. 교사들은 수년 간 업체와 전속 계약까지 맺고 적게는 수천 만원, 많게는 수억 원의 뒷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동료 교사들을 끌어들여 ‘문항 공급책’ 역할을 하는 등 비위 정도가 심각한 교사 29명에 대해서는 정직 등 징계를 해야 한다고 교육부에 통보했다. 나머지 교사 220명에 대해서도 적정한 조치를 취하라고 통보했다. 감사원은 대형 입시학원들이 시중에 발간된 EBS 수능연계 교재의 집필진 명단을 보고 직접 교사들에게 ‘문항 거래’를 제안한 사실을 확인하고 “집필진 명단 비공개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교사와 학원의 ‘문항 거래’ 93% 서울·경기서 발생
감사원이 18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직 교사 249명은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입시학원이나 강사로부터 총 212억9000만 원을 받았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교사 1인당 평균 8500만 원을 받은 것. 감사원이 2018년부터 2022년 사이에 사교육업체로부터 5000만 원 이상을 받은 교사의 ‘문항 거래’ 의혹을 조사한 결과다. 이들 교사들이 본연의 업무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과 공직자의 정당한 이유 없는 금품수수를 금지한 청탁금지법을 어겼다는 게 감사원의 시각이다.
감사원이 확인한 부정한 ‘사교육 카르텔’의 93.4%는 서울·경기 지역에서 발생했다. 교사가 받은 돈의 액수 기준으로 봤을 때 서울에선 송파구, 강남구, 양천구 소속 학교 교사 순서로 ‘문항거래’ 범행 비율이 높았다. 감사원은 “대치동, 목동 등 대형 사교육 업체가 집중된 지역의 학교 교사들이 사교육 시장 참여도가 높았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뉴스1부정한 문항거래는 대부분 대형 입시 학원의 강사나 직원들이 시중에 발간된 EBS 수능연계 교재의 집필진 명단을 보고 책을 쓴 교사들에게 “모의고사 문제를 만들어달라”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업체와 거래를 맺은 교사가 다른 동료 교사들을 추천하면서 ‘문항 공급 조직’까지 만든 사례들도 적지 않았다. 계약은 대부분 증거가 남지 않는 구두로 이뤄졌다. 일반 적으로는 문항당 10만 원 수준, 고난도인 ‘킬러문항’은 문항당 20만 원을 넘는 선에서 가격이 매겨졌다. 학원이나 강사들은 현직 교사들과의 문항 거래 이유에 대해 “양질의 문항을 만들 능력이 부족하고 강의 일정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다”고 감사원에서 진술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고교 영어 교사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EBS 수능 연계교재의 집필진으로 참여하면서 아직 발간되지 않은 교재의 문항을 살짝 바꾼 뒤 한 입시학원 영어 강사에게 판매해 5억8000여 만 원을 챙겼다. 그는 자신이 집필진이 아닐 때도 친분이 있는 다른 집필진 교사에게 “학교 수업 참고용으로 사용하려 한다”며 문항을 확보해 살짝 변형한 뒤 강사들에게 전달했다. 이 교사는 2019년에는 학원 영어 강사에게 판매했던 문항 13개를 자신이 재직 중이던 학교 내신 시험에도 그대로 출제했다.
● 교사들이 학교에서 TF팀 꾸려 ‘학원 교재 발간’ 회의도
교사들이 특정 학원 강사와 문제를 공급하는 ‘전속계약’을 맺는 등 학원 관계자처럼 활동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고교 수학 교사는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대학 동기였던 학원 수학강사의 교재에 들어갈 문항을 만들고 검토했다. 이 교사는 강사와 전속 계약을 맺은 뒤 연봉으로 3000만~4000만 원씩 총 2억여 원을 챙겼다.
서울 양천구의 한 고교 수학 교사는 2017년부터 1년 동안 같은 학교에 근무 중인 동료 수학교사 2명 등으로 팀을 꾸렸다. 학원에 제공할 수학 교재를 집필하는 TF(태스크포스) 팀이었다. 이 교사들은 학교의 수학연구실에 모여 학원에 보낼 문제집을 만들기 위한 회의까지 정기적으로 열었다.
학원과 문항 거래를 해오던 교사가 수능 출제 위원으로 참여한 뒤에 ‘몸값’을 올려달라고 요구한 사례도 확인됐다. 서울 강북구의 한 지구과학 과목 교사는 2020년 10월 자신과 거래를 하던 사교육 업체에 “한달 간 연락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렸다. 수능 출제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린 것. 이 교사는 출제를 마친 뒤인 2020년 12월 업체 측에 ‘문항 20개당 300만 원’이었던 기존 거래 단가를 인상해달라고 했다.
적발된 교사 16명은 학원과의 문항 거래 사실을 숨기고 수능이나 모의평가 출제에 관여했다. 평가원과 교육부는 수능과 모의평가 출제위원을 위촉하기 전에 후보자가 최근 3년간 수험서를 집필해 시장에 내놓은 적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런데 이들 교사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 뒤 출제자로 참여했다.
서울 노원구의 한 고교 영어 교사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EBS 수능 연계 교재를 집필했고, 2010학년도부터 2022학년도까지 수능과 모의평가 검토위원으로 10차례 참여했다. 이때 그는 4개 사교육 업체와 문항거래를 해 6956만 원을 챙겼다. 그는 2021년 9월에는 사교육업체 측으로부터 “모의평가 영어 37번 문항에 대한 평가원의 해설 논리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문의를 받은 뒤에는 직접 평가원 관계자에게 출제 의도 등을 물어봐 업체에 답변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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