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장기요양 사망자 60%, 효과 없는 연명의료 받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4일 03시 00분


[존엄사법 7년, 갈길 먼 ‘존엄한 죽음’]
호스피스, 5개 질환으로 국한돼… 인프라는 암 환자 수요도 못 따라가
자택-요양원 ‘임종 케어’ 준비 안돼
“연명의료 대안에 정책적 투자 필요”

치매, 거동 불편 등으로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 타인의 도움을 받다가 숨진 환자 10명 중 6명은 사망 전 한 달 내에 연명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명의료란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치료 효과 없이 임종에 이르는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뜻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2018년 2월 전면 시행된 뒤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장기요양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연명의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국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만큼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장기요양 사망자 60% 연명의료 받아

13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이 2023년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사망자 16만9943명의 특성과 치료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 중 10만1471명(59.7%)이 사망 전 한 달 내에 연명의료를 받았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연명의료 시술은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 7가지다. 이들이 받은 연명의료는 혈압상승제 투여가 가장 많았고 이어 수혈, 인공호흡기 착용, 심폐소생술 등의 순이었다. 장기요양등급은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받는데 대부분 65세 이상이다.

하지만 연명의료는 환자 본인에게 고통스러울 수 있고 가족에게도 심리적·경제적 부담을 줄 수 있다. 연명의료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한정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자들은 막상 환자의 임종을 앞두면 ‘하루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단순히 ‘연명의료는 의미가 없으니 받지 말자’고 할 것이 아니라 연명의료가 아닌 다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건강보험연구원은 14일 자체 심포지엄에서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 연명의료 이외에 현실적 선택지 부족

국내에선 환자가 연명의료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결정했을 때 환자와 보호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연명의료를 받지 않는다면 통증을 조절하고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은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 만성호흡부전 등 5개 질환 환자들뿐이다. 장수정 국립강릉원주대 간호학과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호스피스·완화의료 대상자를 너무 협소하게 규정해 제도의 사각지대가 크다”며 “해외처럼 치매 등 다른 환자들도 대상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암 환자 위주로 지원해 나머지 4개 질환의 환자들이 충분히 제도를 이용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교수는 “현재 호스피스·완화의료 관련 인프라가 암 환자의 수요도 다 충족시키지 못하는 실정이라 더 확대할 여력이 부족하다”며 “적극적인 정책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 “병원 아닌 요양원-자택서 존엄한 죽음을”

환자가 거주하던 요양원 등 의료복지 시설이나 자택에서 ‘임종 케어’를 받으며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지만 관련 인프라 역시 부족한 실정이다. 유 교수는 “죽음을 앞둔 환자를 위한 의료와 돌봄 서비스는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며 “환자가 남은 시간을 의미 있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만큼 이제는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를 활발하게 할 때라고 강조했다. 건강보험연구원 관계자는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바로 모두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전했다.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임종 케어#존엄한 죽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