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조희대 “판결 일관성 지켜야 사법부 독립-국민 신뢰 회복 가능”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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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 인터뷰]
법관의 자격-역할은
사법부 독립은 맘대로 판결 아냐
법관 권한 막강, 나약해지지 말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해야
대법관 실력이 인권보호 첫째 수단… 법관되려면 서민의 삶 많이 경험을

조희대 대법원장(가운데)이 지난달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한 모습. 조 대법원장은 14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대법원장 공관을 나가거나 들어갈 때 ‘국민 세금을 제대로 쓰면서 역할을 하고 있나, 빚만 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동아일보DB
조희대 대법원장(가운데)이 지난달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한 모습. 조 대법원장은 14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대법원장 공관을 나가거나 들어갈 때 ‘국민 세금을 제대로 쓰면서 역할을 하고 있나, 빚만 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동아일보DB

“법관들이 ‘법원은 칼도 없고 지갑도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엄청 잘못된 말이다. 어느 칼이며, 어느 지갑도 사법부에 복종하지 않는 데가 있나.”

조희대 대법원장은 1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장 집무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사법부의 역할이 담긴 헌법 조문들을 직접 손으로 짚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법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라며 “막강한 권한을 가진 법관들이 나약해지거나 좌고우면하지 말고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기 만료를 앞둔 대법관 3명의 후임에 대한 임명 제청 원칙에 대해선 “실력이 인권을 보호하는 가장 첫 번째 수단”이라고 못 박았다. 법관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시장통에 가서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 같은 삶의 현장을 직접 많이 경험해 보라”고 조언했다. 이날 인터뷰는 4시간 동안 이어졌으며 정원수 부국장이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치의 사법화에 이어 경제의 사법화까지 심화되면서 사법부 비중이 커지고 있는데….

“민감한 사건들이 사법부로 밀려들고 있다. 미국도 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형사재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은 걸로 나라가 두 쪽으로 나누어져 한쪽에선 재판을 잘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똑같지 않나.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할 수밖에 없다.”

―이런 때일수록 법관과 대법원장의 역할은….

“문제가 됐을 때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사법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다.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독립을 앞장서서 지켜낼 거고, 법관의 권한이 막강하니 자부심을 갖고 재판해야 한다. 대통령도 사형을 선고할 수 없지만 법관은 할 수 있다. 법관들이 자꾸 나약해지지 말고 좌고우면해선 안 된다.”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을 방안은….

“사법부 독립이라고 개별 법관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게 아니다. 사법부가 판결의 일관성을 가진다는 공감대가 있어야 국민의 신뢰를 얻고 제대로 봉사할 수 있다. 국민이 형을 높이라 하고 구속하라고 한다고 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 헌법과 법률인지 고민하고 일관성을 갖고 제대로 재판해야 한다.”

―사법부에 대한 견제는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법관에게 인신공격만 해선 긴장하지 않는데, 언론과 법학교수 등이 판결에 대해 학술적으로 비판하면 법관들도 ‘엉터리 판결했다간 이렇게 혼나는구나’라고 긴장한다. 법관이 헌법과 법률이라는 항로를 이탈하면 국민들 보기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보일 것이다.”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 1심 재판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는데….

“국민들께 송구하고 그런 일이 생겼다는 자체가 안타깝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앞으로 시스템을 고쳐 나가겠다.”

―8월 퇴임하는 대법관 3명의 후임을 제청하는 최우선 기준은….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시각을 다양하게 봐야 하지만 실력이 최우선이다. 대법관 1인당 연간 3000건 넘게 처리해야 한다. 흔히 사회에서 인권과 다양성을 얘기할 때 성소수자 예를 많이 드는데, 성소수자 건강보험 등도 중요하지만 사형당할 수 있는 피고인에 대한 정교한 판결도 중요하다. 실력이 인권을 보호하는 첫 번째 수단이다.”

―앞으로 이념적으로 치우침 없는 대법원 판결을 기대해도 되나.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데 전원합의체에서 대법원장의 투표권은 13분의 1밖에 안 된다. 대법관 시절에도 전합에서 대법관끼리 고성을 지르며 법리를 다투고 한 달 동안 신경전 하는 모습도 봤다. 그게 대법원이다.”

―사회적으로 엄벌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양형 등 제도가 못 따라오는 문제도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계속 시정하고 있다. 성폭력도 예전엔 보통 3∼5년이거나 집행유예였는데 지금은 최하가 징역 3년이다. 기술 유출, 스토킹, 보이스피싱, 동물학대 등의 양형 기준도 높아진다. 다른 죄의 형량이 높아지니 지금은 살인죄가 오히려 형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다만 형벌을 높이는 것만이 반드시 좋은 것인지도 깊이 연구해봐야 한다.”

―청문회에서 밝힌 조건부 구속영장제 도입 경과는….

“사법 불신 중 큰 부분이 구속 문제다. 나도 학교(성균관대 로스쿨)에 있을 때 교수들이 현안을 두고 구속 여부를 물으면 전혀 답변할 수 없었다. 구속도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조건부 구속영장제가 100%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지만 현재로선 이 외의 다른 대안이 없다. 다만 입법 사안이라 우리가 할 순 없고, 국회가 입법하겠다면 반대하진 않겠다는 입장이다.”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도 쟁점인데….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 능력이 없어지면서 압수수색이 형사재판에서 가장 중요해졌다. 입법으로 할지 대법원 규칙 개정으로 할지 정해진 건 없고 관련한 정책 용역 결과가 9월에 나온다. 규칙으로 하는 게 논란이 된다면 국회가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니 국회가 얼마든지 나설 수 있는 사안이지 않느냐.”

―대법원장이 보는 법관의 조건은….

“법관이 되려면 새벽에 시장통에 가서 서민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 같은 삶의 현장을 직접 많이 경험해 봐야 한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라는 격언으로 유명한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도 ‘런던의 빈민가에 가보지 않은 자는 내 연구실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법관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갖춰야 국민들의 신(信)을 얻을 수 있다.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인 ‘인’, 정의감과 부끄러움을 뜻하는 ‘의’, 본인이 틀릴 수도 있다는 지적 겸손(intellectual modesty)으로서의 ‘예’, 법관으로서 실력인 ‘지’다. 이런 태도를 가진 법관들을 우대하는 인사를 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

● 조희대 대법원장 약력
△1957년생(67세) 경주 출생 △경북고, 서울대 법대 △사법시험 23회(사법연수원 13기) △서울 형사지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대구지방법원장 △대법관 (2014년 3월∼2020년 3월) △성균관대 법학전문 대학원 석좌교수 △제17대 대법원장(2023년 12월 취임. 2027년 6월 정년퇴임 예정)


[단독]조희대 “법관 임용 ‘배석 3∼5년, 재판장 10년’으로 이원화해야”


재판 지연 해소” 거듭 역설… 법관 3000명이 年 600만건 맡아
다른 나라보다 업무 2∼8배 많아… 법관 늘리고 법관임용제 손볼 필요
재판연구원-사법보좌관 충원해… 판사의 과중한 업무 분담시켜야“
조희대 대법원장이 1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법원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재판 지연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4시간가량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조 대법원장은 중간에 재킷을 벗고 넥타이까지 푼 뒤 미리 준비해 온 자료를 직접 보여주며 설명해 나갔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조희대 대법원장이 1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법원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재판 지연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4시간가량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조 대법원장은 중간에 재킷을 벗고 넥타이까지 푼 뒤 미리 준비해 온 자료를 직접 보여주며 설명해 나갔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제가 제일 외롭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1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장 집무실에서 가진 동아일보 단독 인터뷰에서 “어려운 시기에 와서 책임감이 무겁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12월 취임 직후 ‘재판 지연 해소’를 사법부의 최우선 현안으로 꼽은 그는 주로 점심을 혼자 집무실에서 먹으며 시간을 아껴 일하고 있다. 휴대전화에는 ‘챗GPT’를 깔아두고 세계 각국의 사법제도 등을 영문으로 직접 찾아본다. 최근 2개월간 전국 법원을 돌며 구성원을 만나온 조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4시간 동안 재판 지연 등 사법부 현안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최우선 과제로 꼽은 재판 지연 문제의 진단은 마쳤나.

“근본적으로 법관 부족이 심각하다. 휴직 등을 빼면 3000명도 안 되는 법관이 연간 600여만 건을 맡아 부담이 다른 나라보다 2∼8배 수준으로 많다. 거기에 가정법원의 면접교섭 같은 복지후견이나 회생사건 등 업무 범위도 늘어나는데 인원은 그대로다.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도 증거로 인정되지 않으니 모든 증인이 법정에 나와야 해 예전에 수백 건 처리할 시간에 한 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복합적 문제인데 구체적 해결 방안은….

“결국 법관 수가 늘어야 하고 법관임용제도 우리 실정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우선 법원장이 실태를 상세히 알기 위해 직접 장기미제사건 재판을 맡도록 했다. 판결문을 핵심만 간단히 써서 한 주당 3건씩 쓰던 것을 5, 6건씩 써 보자고도 제안했다. 또 재판연구원과 사법보좌관 등을 적극 충원해 법관 업무를 분담시켜야 한다. 사법 정보화를 서둘러 기록들을 전자화하고, 사건 요약과 판례 검색 등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내년부터 법관 최소 법조경력이 5년에서 7년으로 늘어나는데….

“배석판사는 3∼5년, 재판장은 10년으로 최소 법조경력을 이원화하는 방식으로 법원조직법을 개정해야 한다. 한국이 (3명이 재판하는) 합의부를 유지하는 이상 거기에 맞는 판사를 뽑아야 한다. 체력이 좋아 기록을 꼼꼼히 볼 수 있는 젊은 배석판사와 경륜을 토대로 유무죄를 가릴 수 있는 재판장이 상호 보완 관계를 이룰 수 있게 해야 한다.”

검사와 변호사 등 법조 경력자들만 판사로 뽑는 ‘법조일원화’는 다양한 사회 경험이 있는 법관을 선발하자는 취지로 2013년 도입됐다. 내년부터는 법조경력 7년 이상, 2029년부터는 10년 이상의 변호사나 검사만 판사가 될 수 있다.

―배석판사는 젊게, 재판장은 노련하게 뽑자는 건가.

“내가 아는 노래 중에 ‘몰라서 걸어온 그 길, 알고는 다시는 못 가게 된다’는 가사가 있다. 처음엔 몰라서 했지만 겪고 나면 못 한다는 내용이다. 재판연구관을 할 때 주말에 아픈 몸을 이끌고 다음 날 내야 하는 보고서를 한 페이지씩 넘길 때 이 가사가 생각나더라. 배석판사는 그만큼 깨알같이 악착같이 봐야 하는데, 법조경력 3∼5년 된 젊은 인재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경륜 있는 법관이 재판하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미국식 법관임용제는 우리나라 현실과 안 맞는다. 영미법 근간의 배심제인 미국은 당사자끼리 공방을 벌이고 재판장은 진행자로 다툼이 있을 때만 개입한다. 미국 형사재판은 무죄면 항소도 없고 판결도 안 쓴다. 반면 우리는 법관이 기록을 직접 다 검토해 유무죄를 가리고 많게는 수천 쪽짜리 판결문도 써야 한다. 이런 나라에서 미국식으로 하는 건 국민을 속이고 엄청난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이미 실패한 벨기에 사례가 있는데 ‘우리는 끝까지 가보고 돌아가자’고 할 이유가 있나. 환상을 심어줄 게 아니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재판기간을 법으로 정하는 방법은 어떤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헌법에 명시돼 있다. 예를 들어 선거사범은 1심을 6개월, 2∼3심을 각각 3개월 안에 선고하도록 공직선거법에 강행 규정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사실상 지켜지지 못할 만큼 법관 부족이 심각하다.”

조 대법원장이 건넨 서류에는 선거사범의 재판기간을 강행 규정으로 정한 공직선거법 제270조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를 어겨도 재판 자체를 무효로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해당 규정은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법관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법정 규정마저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법관 증원 법안이 폐기됐는데….

“전국 법원을 순회할 때 ‘법관 한 명이라도 보내 달라’는 말을 가는 곳마다 들었을 만큼 전국 모든 법원에서 법관 부족이 정말 심각하다. 법관 수는 법으로 정해져 있어 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3214명인 법관 정원을 5년에 걸쳐 총 370명 늘리는 법관정원법 개정안은 올 5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여야의 무관심 속에 끝내 국회 문턱을 못 넘고 폐기됐다.

―젊은 엘리트 사이에선 더는 판사가 1순위 지망이 아닌데….

“법관 급여가 동년배 로펌 변호사의 70% 정도라도 돼야 한다. 사명감으로만 법관을 하라고 하면 제도 운영이 안 된다. 로펌 급여의 3분의 1만 받고 누가 법관을 하려 하겠나. 싱가포르에선 법관 보수를 로펌 파트너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높였더니 국민의 사법 신뢰도가 90%가 넘는다고 한다.”

―사법부 예산이 국가예산의 0.33% 수준밖에 안 되는데….

“결국 재판 지연도 예산 부족과 맥이 닿아 있다. 재판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형사소송 전자화도 예산 문제로 늦어지고 있다. 최근 법원 전산망 해킹 사태 이후 전담 전문가를 채용하려 해도 월급이 너무 낮아 구인난이 심했다. 사법부 예산을 2000억 원만 증액해도 2조 원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조희대 대법원장#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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