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동서남북]난방비 퍼주기 경쟁에 두 번 우는 지역 주민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3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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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진 기자
이경진 기자
“난방비가 대폭 오른 것도 힘든데, 난방비 지원도 지자체마다 제각각이네요.”

경기 고양시의 공무원 A 씨는 23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이 같이 하소연했다. 최근 한 공무원 모임에서 난방비 지원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언쟁이 심해져 마음이 상했다는 것이다. 특히 전 시민에게 20만 원씩 난방비를 지원하기로 한 파주시 사례가 언급되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했다. A 씨는 “공무원 사회에서도 파주시 처럼 다 지원해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난방비 보편적 지원 논란이 뜨겁다. 지난달 31일 민주당 소속 김경일 파주시장이 “가구당 20만 원 난방비 지원”을 발표하면서다. 지난해 기준 28.93%의 재정자립도를 기록하고 있는 파주시가 지원근거도 만들지 않고 ‘전국 최초 난방비 지원’ 타이틀을 따냈다. 발표 뒤 9일이 지난 이달 9일 임시회를 열고 ‘파주시 재난극복 및 민생경제 활성화 지원 조례안’과 442억 원의 추경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여기에 중앙 정치가 가세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에 김 시장을 불러 격려했다. 급기야 5일 이 대표가 민주당 소속 경기 지역 기초단체장을 불러 “모두가 힘든 때인 만큼 전 가구를 대상으로 (난방비를) 지원하는 방식을 연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야당 출신 지자체간 경쟁 양상이 펼쳐졌다. 광명과 평택 안성 등은 가구당 10만 원씩 보편적 난방비를 지원 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기초생활수급자에게 1만300여 가구에 10만 원씩을 주겠다고 한 최대호 안양시장은 14일 1인당 5만 원씩 더 준다고 발표했다. 한 자치단체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파주도 준다고 하고 다른 지자체도 준다고 하는데 어떻게 지원을 안하고 버티겠냐”고 반문했다.

일선 공무원들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없는 살림에도 난방비 지원금 마련하기 위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한 지자체에서 예산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시장이) 다짜고짜 예산을 얼마나 쓸 수 있냐는 식으로 압박하는가 하면, (가용 재원이) 없으면 예비비나 추경에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지자체와 지자체장이 그런 건 아니다. 경기도 내 국민의힘 소속 자치단체장들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 등에 선별적으로 난방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민주당 소속인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난방비 보편 지원에 선을 그었다. 지자체장이 민주당 소속인 수원과 시흥, 화성, 부천도 ‘재정난’ 등을 이유로 보편적 지원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 경기도의 한 공무원은 “포퓰리즘적 요소를 걷어내고 최대한 지속가능한 지원책이 될 수 있게끔 고심 끝에 선별적 지원을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다른 지자체들의 퍼주기가 부담스러운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경기도 내에서 조차 난방비 지원 대상자가 다른 현상을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분노는 생각보다 깊다. 난방비 폭탄 만으로도 부담이 상당한데, 사는 지역에 따라 지원금을 받는지 여부가 갈리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나타나면서다. 경기도의 한 40대 남성은 “경기도 내 지역에 따라 난방비가 다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금을 덜 내는 것도 아닌데 지원금이 다른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정치인들의 퍼주기 경쟁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니 더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례가 없는 난방비 폭탄 속에 난방비 지원마저 제대로 못받는 일반 주민들은 과연 누구를 탓해야 할까.

이경진 기자 lk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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