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동서남북]아동학대도 ‘재난’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8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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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8일 오전 부모의 학대로 숨진 A 군(12)이 살던 인천 남동구의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는 아동용 자전거와 킥보드 등이 놓여있다. 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이달 8일 오전 부모의 학대로 숨진 A 군(12)이 살던 인천 남동구의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는 아동용 자전거와 킥보드 등이 놓여있다. 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공승배 기자
공승배 기자
“아동학대가 발생한 가정은 자연재해나 재난 상황에 빠진 것과 같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재앙에 가까운 두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인천 송도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한 학부모는 최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유독 인천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반복되는 것 같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인천 지역 교육당국이 아동학대 예방에 소극적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인천에서는 이달에만 2명이 아동학대로 목숨을 잃었다.

초등학교 5학년생 A 군(12)이 친아버지와 계모 사이에서 수개월간 학대를 당하다 온몸에 멍이 든 채 숨졌다. 이에 앞선 2일에는 20대 엄마가 2살 아이를 사흘간 홀로 집에 방치해 숨지게 하기도 했다.

A 군(12)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계모 B 씨(43·왼쪽)과 친부 C 씨(40). B 씨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살해 혐의로, C 씨는 아동복지법상 상습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각각 경찰에 구속됐다. 인천=뉴시스
A 군(12)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계모 B 씨(43·왼쪽)과 친부 C 씨(40). B 씨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살해 혐의로, C 씨는 아동복지법상 상습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각각 경찰에 구속됐다. 인천=뉴시스


특히 A 군은 부모가 지난해 11월부터 “유학 준비로 홈스쿨링을 시키겠다”며 장기간 학교에 보내지 않아 인천시교육청의 ‘집중관리’ 대상에 올랐지만,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A 군의 계모는 A 군이 숨지기 전날에도 담임교사와의 통화에서 검정고시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A군의 계모가 얼마나 철저하게 A군을 학교로부터 격리하고, 학대로 몰고갔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인천시교육청의 집중관리는 담임교사가 한 달에 1번 이상 A 군과 직접 통화해 안전을 확인하고, 관리카드를 적어 교육청에 보고하는 방식이었다. 지난달 30일까지도 담임교사가 A 군과 직접 통화했고, 지난해 12월 1일에는 A 군과 계모를 직접 학교로 불러 면담까지 진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학대 방지 시스템은 A 군의 학대 정황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좀 더 실효적이고 적극적인 학대 예방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제2의 학대 사망 사례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이래서 나온다.

인천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건은 2020년 2427건, 2021년 2789건, 지난해 2024건 등 매년 2000건이 넘는다.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인천의 아동학대 신고는 3720건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경기, 서울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학대로 인한 사망 아동은 인천이 5명으로, 경기도(12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인천에서는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인천시교육청 등은 위기아동 전수 조사, 예방 강화방안 마련 등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미봉책에 그칠 때가 많다. 2021년 인천 자치경찰이 출범했을 때도 1호 과제로 ‘아동안전 강화’를 내세웠지만 여전히 매년 2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학대에 떨고 있다.

전문가들은 교육청 집중관리 체계의 내실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화만으로 위기아동의 안전을 확인할 게 아니라 부모와 분리된 상태에서 아이와 직접 대화하며 표정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교육현장에서는 부모 동의가 없으면 가정을 방문해 아이와 직접 대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아동학대의 80% 이상이 가정 내에서 부모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교육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아동학대의 가장 큰 책임은 가해자에게 있다. 하지만 이를 예방해야 할 1차 교두보인 교육청의 역할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난에는 늑장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는 인식처럼, 아동학대도 재난으로 생각한다면 과잉대응이 나을 수 있다.

공승배 기자 ks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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