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 특허심사관제 ‘반도체 기술유출 방지’ 묘약될까[디지털 동서남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일 10시 00분


코멘트
동아일보 사회부에는 20여 명의 전국팀 기자들이 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지역의 생생한 목소리를 찾기 위해 뛰고 있습니다. 전국팀 전용칼럼 <동서남북>은 2000년대 초반부터 독자들에게 깊이있는 시각을 전달해온 대표 컨텐츠 입니다. 이제 좁은 지면을 벗어나 더 자주, 자유롭게 생생한 지역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디지털 동서남북>으로 확장해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지면에 담지 못한 뒷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따뜻한 이야기 등 뉴스의 이면을 쉽고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지명훈 기자
지명훈 기자
최근 국가핵심기술인 반도체 웨이퍼 연마(CMP) 기술 등을 중국에 유출한 일당이 적발됐다. 특허청 기술디자인특별사법경찰(기술경찰)과 대전지방검찰청은 오랜 추적 끝에 1월 26일 산업기술보호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A씨(55) 등 국내 반도체 대기업와 중견기업 직원 3명을 구속기소하고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은 기술전쟁 시대에 가장 매국적인 범죄 가운데 하나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가핵심기술 36건을 포함해 112건의 기술이 해외 유출됐고, 이로 인한 피해 규모는 26조원에 달한다. A 씨 일당이 입힌 피해는 최소 1000억 원대다. 피해규모를 밝히지 않은 기업들까지 합치면 막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핵심기술 인력의 해외취업을 막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더구나 중국의 해외 기술 탈취 기도는 점차 치밀해 지고 있다. 기업들은 경쟁업체 취업을 막기 위해 ‘전직금지 약정서’를 쓰게 하고 그 대가를 지불하기도 한다. 하지만 2~3년 이상 그런 약속을 강요하기 힘들다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중국의 기술 탈취 기도는 점차 심해지고 있다. 그래픽 동아일보 DB
중국의 기술 탈취 기도는 점차 심해지고 있다. 그래픽 동아일보 DB
퇴직한 핵심기술 인력도 돈벌이를 해야 하니 애국심에만 호소할 일도 아니다. 이번에 적발된 A 씨처럼 임원 승진에서 누락됐다는 불만에 아예 작정하고 미리부터 기술을 팔아넘길 준비를 한다면 속수무책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허청이 도입해 23일 첫 합격자를 발표한 ‘반도체 분야 전문임기제 특허심사관 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 업무를 수행하는 임기제 공무원 채용제도다. 5급 상당으로 최초 2년 근무 후 최대 10년 까지 연장이 가능해 퇴직한 전문직 연구원들을 흡수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30명 모집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 반도체 전문가 175명이 지원해 6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통상 2~3 대 1 정도의 전문임기제 심사관 경쟁률에 비춰 이례적으로 높다.

이번 합격자 연령은 평균 53.8세로 최고령은 60세, 최연소는 41세였다. 83%가 석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반도체 분야 경력이 평균 23년 9개월인 반도체 베테랑 전문 인력들이다.

류동현 특허청 차장은 “전문임기제는 민간의 우수 퇴직인력을 공공 영역에 활용하는 새로운 실험”이라며 “이를 통해 반도체 분야 핵심인력의 해외 이직을 방지하고 반도체 특허의 신속·정확한 심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 한다”고 밝혔다.

기대해도 좋을 만큼 이미 좋은 신호가 감지된다. 이번에 합격은 못했지만 지원을 했던 일부 반도체 핵심인력은 중국과 유럽 등지에 취업을 했다가 U턴을 시도한 경우였다.

한 합격자는 지원 동기를 묻는 질문에 “국내 반도체 업계 동료 다수가 해외로 스카우트 되는 현실을 보며 기술 유출의 문제점과 특허의 중요성을 체감했다”고 했다. 다른 한 합격자는 “신속성이 생명인 반도체 기술 특허가 신청에서 특허 등록까지 2년여가 걸린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반도체인으로서 매우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법학·약학·특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이뤄진 ‘기술범죄의 추적자’ 특허청 기술디자인특별사법경찰. 특허청 제공


애써 개발한 첨단 기술이 유출될까 노심초사했던 기업들도 환영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반도체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이 정부 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길 희망한다”며 “여타 첨단기술 분야로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특허청은 올 하반기에 반도체 분야 전문 특허심사관의 추가 채용을 추진하는 한편 행전안전부 등과 협의해 2차전지 등 다른 기술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퇴직 기술자들을 흡수할 더 다양한 제도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허청에 따르면 매년 국내 반도체 2개사와 디스플레이 2개사 등 총 4개 사의 연간 퇴직 인력만도 1500명에 이른다. 특허청이 당초 특허심사관 200명 채용을 관계부처에 요청한 것도 이런 사정을 감안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공무원 수 동결 방침에 따라 우선적으로 30명만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허청은 이들 합격자에 대해 한 달 간 신원조사 등 필요한 절차를 마치고 공식 임명식을 가질 계획이다. 연일 반도체 인재 양성 방안을 강조해온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임명식장에 깜짝 등장해 제2의 출발을 하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면 어떨까.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