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독도 지킴이 나섰던 제주 해녀들 “독도야 잘 이서시냐”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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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7주년 맞아 34명 재방문
순시선 보내며 독도 노린 日 맞서…독도의용수비대, 제주 해녀와 연대
물질로 독도 사수 경비 마련 도와
어업권 확보-영유권 사수 큰 역할…경북도-제주도, 역사 보존 협력

제주 해녀 김공자 씨가 경북 울릉군 독도 바위에서 강치 새끼를 안고 있다. 1950년대 독도의용수비대가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위 사진). 전통 복장을 입은 제주 해녀들이 18일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 동도 선착장에서 구전 민요 ‘이어도사나’를 부르고 있다. 독도=장영훈 기자 jang@donga.com·경북도 제공
제주 해녀 김공자 씨가 경북 울릉군 독도 바위에서 강치 새끼를 안고 있다. 1950년대 독도의용수비대가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위 사진). 전통 복장을 입은 제주 해녀들이 18일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 동도 선착장에서 구전 민요 ‘이어도사나’를 부르고 있다. 독도=장영훈 기자 jang@donga.com·경북도 제공
18일 오후 경북 울릉군 을릉읍 독도리. 독도의 2개 섬 가운데 동남쪽에 위치한 동도 선착장에서 ‘이어도사나’가 울려 퍼졌다. 이어도사나는 제주 해녀들이 노를 저어 배를 타고 나갈 때 부르는 구전민요로 이별이 없는 이상향을 꿈꾸는 염원이 담겼다.

전통 해녀 복장을 한 공연자들은 ‘테왁’ 장단에 맞춰 독도의 영혼을 달래려는 듯 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테를 두른 박’이라는 뜻의 테왁은 제주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할 때 사용하는 부력(浮力) 기구인데 타악기처럼 쓰이기도 한다. 공연자로 참석한 제주 해녀 이금숙 씨(57)는 “옛날 독도를 힘들게 개척한 선배 해녀들과 함께 독도에 오니 너무 벅차고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 제주 해녀 다시 독도 땅을 밟다
제주 해녀 34명은 이날 광복절 77주년을 기념해 독도를 찾았다. 전통 공연을 마친 해녀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독도야 잘 이서시냐(있었느냐). 다시 오난(오니) 눈물 남쩌(나네)”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독도를 찾은 해녀 중에는 1950, 60년대 독도에서 물질을 했던 김공자(82), 고정순(87), 임영자(86), 홍복열 씨(72)도 있었다.

27세 때 동료 20여 명과 독도에서 물질을 했다는 임 씨는 공연 전 동도 선착장에 내린 후 한동안 독도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사공이 섬을 돌며 바다에 우리를 떨어뜨리면 하루 종일 물질을 한 기억이 떠오른다”며 “그때는 식사도 바다에서 해결했다. 풍랑이 심한 날은 채취한 미역이 다 떠내려가 빈손이 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또 “주로 미역을 채취했는데 섬 한쪽에 널어 말린 후 팔았다”며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제주 해녀들이 처음 독도를 찾은 건 1945년 광복 즈음부터였다. 당시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 사수를 위한 경비 마련 차원에서 제주 해녀를 모집했다고 한다. 순시선을 수시로 보내 독도 침탈을 노렸던 일본에 맞서기 위해 제주 해녀와 연대한 것이다.

실제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마을회관 앞에는 ‘울릉도 출어부인 기념비’가 있다. 1956년 세워진 이 기념비의 뒷면에는 임 씨처럼 독도에서 물질을 했던 해녀 30여 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김 씨는 “독도의 서도 물골(지하수가 샘솟았던 동굴)에서 가마니로 임시 숙소를 짓고 수십 명씩 같이 생활했다”고 돌이켰다.

김수희 독도재단 교육연구부장은 “제주 해녀들의 독도 개척은 어업권 확보뿐 아니라 영유권 사수에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독도의용수비대의 수기와 제주 해녀 녹취록 등의 역사적 자료를 통해 독도 지킴이였던 그들의 수호 정신을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 경북·제주 “해녀 역사 재조명” 협약
이번 행사는 경북도와 제주도가 제주 해녀들의 독도 개척 역사를 되돌아보기 위해 마련했다. 경북도와 제주도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제주 해녀들의 숨은 발자취를 수집, 정리해 독도 영토 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근거 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다.

제주 해녀들은 독도 방문 하루 전인 17일 먼저 경북 포항시 구룡포에서 경북 해녀들을 만나 해녀 문화 보전과 관광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경북 해녀는 약 1370명(약 70%가 포항 거주)으로 전국에서 제주 해녀(3437명) 다음으로 많다.

같은 날 포항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주 해녀 환영 행사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오영훈 제주도지사, 박용선 경북도의회 부의장, 남한권 울릉군수, 공경식 울릉군의회 의장 등이 먼 길을 온 제주 해녀들을 환영했다.

이날 경북도와 제주도는 ‘해양 인문 교류 및 섬 생태관광 활성화를 위한 업무 협약’도 체결했다. 두 지자체는 앞으로 해녀 역사 문화를 재조명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김남일 경북도 환동해본부장은 “해녀의 발상지는 제주지만 경북은 구룡포, 호미곶 등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확산된 해녀들이 많아 독특한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앞으로 제주도와 상호 교류를 통해 해녀 문화 연구 및 전승에 힘을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남 군수도 “지금까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해녀 역사를 잘 보전하면 울릉도와 독도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에도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주도는 다음 달 중순 열리는 ‘제주 해녀 축제’에 경북 해녀들을 초청하기로 했다. 제주 해녀 김공자 씨와 함께 독도명예주민증을 받은 오 지사는 “제주 해녀의 독도 물질 기록을 꼼꼼하게 다시 확인할 것”이라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경북도와 해녀 문화 전승 관련 교류 사업을 더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해녀 협력 사업을 계기로 제주도와 해양 및 관광 인프라 확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생 발전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경북과 제주 해녀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는 여러 연구도 같이 하겠다”고 말했다.


독도=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독도#해녀#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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