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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전쟁, 평생 상처로 남지 않도록… 포화 속 우크라 동심 보듬다

입력 2022-06-07 03:00업데이트 2022-06-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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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잃고 각종 범죄 노출되는 등 어린이, 전쟁 현장서 가장 취약
굿네이버스, 접경지 구호단 파견… 그림-놀이로 마음 표현하게 하고
우울감 등 스트레스 대처법 교육… 현지 버스업체-지방정부 손잡고
버스 이동-식량 지원 나서기도
루마니아 이삭체아 지역에서 굿네이버스 직원들이 국경을 넘어 피란 온 우크라이나 아동들과 그림을 그리고 있다. 굿네이버스는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 아동들의 심리적 안정을 돕고 있다. 굿네이버스 제공
우크라이나 오데사에 살던 9세 소녀 소피아(가명)의 삶은 약 3개월 전 큰 폭발음 소리가 들려온 날부터 180도 달라졌다.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날이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국경을 넘어 도착한 곳은 낯선 나라 루마니아. 이곳에서 소피아는 글로벌 아동권리 전문 비정부기구(NGO) 굿네이버스의 긴급구호대응단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 더 이상 폭탄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00일이 훌쩍 지났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약자에게 더 길고 가혹하게 남는다. 아동이 대표적이다. 전쟁 피해 아동은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피란 도중 부모를 잃거나 성폭력과 인신매매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굿네이버스는 전쟁 발발 직후 우크라이나 접경국인 루마니아로 긴급구호대응단을 파견해 이곳으로 피란 온 아동 등에게 인도적 지원을 펼치고 있다. 굿네이버스 한국인 직원 10여 명도 파견돼 지원 활동을 벌였다.

○심리 지원 프로그램으로 ‘전쟁 트라우마’ 예방
대표적인 지원 활동은 아동의 심리적 안정과 회복을 돕는 ‘심리사회적 지원 프로그램’이다. 대부분 부모 손에 이끌려 급히 피란을 떠난 아동들은 초기에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자신이 낯선 나라에 머물고 있고, 그동안 함께 놀던 친구가 옆에 없다는 상황을 인지하면서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굿네이버스는 전쟁 직후 심리사회적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간을 루마니아 이삭체아에 1곳, 갈라치에 2곳 마련해 아이들을 돕고 있다. 프로그램은 전문 교육을 받은 자원봉사자들이 진행한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아이들 690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도움을 받았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5단계에 걸쳐 서서히 자신의 상황을 마주한다. 처음에는 기분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본다. 그 다음에는 갑자기 눈물이 나거나 악몽을 꾸는 등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 반응에 스스로 대처하는 방법을 배운다. ‘전쟁 상황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한다. 차두리 굿네이버스 긴급구호대응단 과장은 “처음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던 아이들이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마음을 열고 그동안 힘들었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피란을 온 우크라이나 대학생 아나스타샤는 통역 봉사를 자처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루마니아인 자원봉사자와 프로그램 참여 아동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마다 아나스타샤가 나섰다. 같은 국가 출신이 함께하자 아이들은 더 쉽게 마음을 열었다. 굿네이버스 긴급구호대응단은 자신도 전쟁의 피해자인 아나스타샤에게 이 같은 봉사가 혹시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고맙다”고 의젓하게 말했다고 한다.


○안전한 이동 위한 버스 지원도
굿네이버스 긴급구호대응단은 루마니아 현지에서 이동 지원과 식량 지원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루마니아에 도착한 피란민의 안전한 이동을 돕기 위해 교통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지 버스업체와 협업해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의 국경지역인 이삭체아에서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까지 하루에 한두 번 버스를 운행한다. 지친 피란민들을 가능한 한 편안하게 다음 목적지까지 이동시키고 이동 도중 폭력이나 인신매매를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현재까지 총 2225명의 이동을 도왔다.

우크라이나에 머물고 있는 이들을 위해 밀가루, 파스타, 식용유, 설탕 등의 긴급 식량도 지원한다. 우크라이나 지방 정부와 협의해 구호 물품을 실은 트럭을 들여보내고 있다. 현재까지 2만2107가구에 식량을 지원했다. 김선 굿네이버스 국제사업본부장은 “아동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며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일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따르면 2일 기준 우크라이나 내 민간인 사상자는 총 9151명이다. 집계되지 않은 사상자를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직접 전쟁 피해 아동들을 만난 굿네이버스 긴급구호 담당자들은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꺼지지 않는 관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변화를 잘 모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도움이 필요해요. 아이들보다 세상을 조금 더 먼저 산 어른들이 꼭 관심을 기울이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정효진 굿네이버스 긴급구호대응단 과장)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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