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고생 안 시키고 죽어야 축복” 요양보호사 보살핌도 장수에 한몫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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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백세인’ 〈중〉

2018년 2월 100세인 김모 할머니가 오른쪽 심장동맥의 막힌 곳을 뚫고 스텐트를 삽입하는 시술 후 병상에서 자식에게 전화하고 있다. 전남대 의대 조정관 교수 제공
2018년 2월 100세인 김모 할머니가 오른쪽 심장동맥의 막힌 곳을 뚫고 스텐트를 삽입하는 시술 후 병상에서 자식에게 전화하고 있다. 전남대 의대 조정관 교수 제공
전남 곡성의 조모 할아버지(106)는 구순의 할머니와 80년 넘게 해로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설거지를 하는 등 몸소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할아버지는 오후 8, 9시에 잠자리에 들고 오전 6시에 일어나 마당 청소를 하고 거의 매일 마을회관에 가는 등 활발한 신체활동을 유지하고 있다.

식사는 고기나 생선보다는 주변에 흔한 채소 위주로 하는 편이다. 할아버지는 연구진에게 “이렇게 오래 살 줄 모르고 틀니를 안 해서 불편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오래 살고, 건강하고, 자식들도 잘 살아 복이 많다”고 하면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잘 죽는 것이 복”이라고 말한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조 할아버지 부부 등 사례를 연구해 ‘한국의 백세인 20년의 변화’를 펴낸 연구자들은 2018년 조사 당시 구곡순담의 백세인 7명이 살아가는 모습을 스케치 형태로 담았다. 현재 네 분은 세상을 떠났고 세 분은 여전히 가족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있다. 요양보호사의 보살핌도 백세인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있다.

거동이 편치 않은 할머니는 요양 3등급 판정을 받고 요양보호사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두 부부만 사는 노인가구지만 요양보호사가 주중에는 매일 오전 6시에 일찍 식사를 챙겨드리고 집안일을 한다. 주말에는 정년퇴직한 큰아들이 와서 돌봐드리기 때문에 돌봄 공백이 없다.

연구진은 과거 부양은 대체로 아내, 며느리, 딸 등 여성의 영역이었지만 요즘에는 아들이 식사를 준비하고 목욕을 시켜드리는 등 직접적인 부양에 참여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례군 구례읍에 사는 조모 할머니(103)는 젊은 시절 집안의 모든 살림을 도맡아 가족을 돌봤다. 할머니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나이가 되자 돌봄의 공백이 생겼다. 요양보호사는 셋째 아들, 손자와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의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6년 전 처음 할머니와 연을 맺은 요양보호사는 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생기면서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매일 두 시간씩 할머니 가족을 돌봐주고 있다.

할머니는 고기는 거의 먹지 않고, 김이나 나물과 함께 밥 한 공기를 30분 이상 천천히 먹는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목욕차량에서 씻고 보건소에서 영양제를 맞으며 건강을 지키고 있다. 할머니의 건강 비결은 많이 움직이는 것이다. 셋째 아들은 “무더운 여름에 몸이 상할까봐 못 나가시게 하는데 실버카를 밀고 옆집에 가서 풀을 뽑기도 하고 고들빼기를 캐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이신다”고 전했다.

100세에 심장동맥 스텐트 시술을 한 치병장수(治病長壽)의 사례도 있다. 올해 104세인 김모 할머니는 2017년 10월 저녁 식사 후 가슴 통증이 심해 혀 밑에 니트로글리세린을 넣고 아들 차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급성 심근경색증 진단을 받고 90% 정도 막힌 왼쪽 심장 동맥을 풍선으로 넓히는 확장술을 받았다.

이듬해 2월 완전히 막혀버린 오른쪽 심장동맥을 뚫고 스텐트를 넣었다. 7개월 후 만 100세 생일 이틀 전 밤에 가슴 통증과 함께 숨이 차서 응급실로 실려 갔다. 급성 심근경색에 의한 급성신부전으로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다음 날 1년 전에 넓혔던 심장동맥을 다시 뚫고 스텐트를 넣었다. 시술이 성공해 다음 날 병실에서 며느리가 끓여 온 100세 생일 미역국을 먹었다. 시술 후 가슴 통증도 없고 숨쉬기도 훨씬 편해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다.

할머니는 현재 넷째 아들 부부와 살고 있다. 비록 보행기를 이용해 걷기는 하지만 용변과 세수를 혼자서 해결할 정도로 건강하다. 낮에는 주간보호센터에 나가고 저녁에는 아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한다. 주말에는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찾아오는 증손자들을 보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한국의 백세인#요양보호사#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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