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0살, 12살 손주들과 함께 살아요. 혹시라도 나 때문에 손주들이 피해를 볼까봐 늘 불안했지. 딸은 걱정된다고 반대했는데 내가 우겨서 예약해 달라고 했어요. 하루라도 빨리 맞아야 해방될 것 같아서.”
27일 오전 경기 안양시에 사는 박영필 씨(70)는 집 근처 의원에서 아스트라제네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고 나오며 이렇게 말했다. 박 씨는 “재활운동을 해야 해서 매일 6km씩 걷는데 반쯤가면 마스크가 흠뻑 젖어 두장을 갖고 다녔다”며 “어서 운동할 때 마음 편히 숨쉬고 싶다”고 말했다.
● 전국 동네 병의원 ‘북적’
65~74세 일반인과 만성 중증 호흡기질환자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이 이날 전국 1만2800여 개 위탁의료기관에서 시작됐다. 동네 병의원들은 오전부터 종일 백신 접종 대상자들로 붐볐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한 의원에서 백신을 맞고 나온 김모 씨(72·여)의 얼굴에서도 기대감이 드러났다. 그는 “백신 맞으면 여름에 야유회 가서 마스크 안 써도 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며 “내 주변 친구들은 다 백신 맞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날 서울 관악구의 한 병원에서는 하루 동안 총 180여 명이 백신을 맞았다. 병원 관계자는 “예약자 중 2명이 오지 않았지만 바로 잔여 백신을 예약한 분들이 접종을 받았다”고 말했다.
병원 근처 약국에는 접종 이후 발열이나 통증을 우려해 미리 해열진통제를 사두려는 고령층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서대문구의 한 약국을 찾은 60~70대 접종자들은 “친구가 백신 맞고 나서 약국에 갔는데 해열진통제가 다 떨어졌다더라. 내가 대신 사다주겠다”며 한 사람당 2, 3개 씩 해열진통제를 사갔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날 접종 독려를 위해 충북 청주의 한 위탁의료기관을 찾았다가 화이자 백신을 원했던 어르신을 만나 진땀을 뺐다. 한 여성 접종자는 “우리 연령대가 고생도 많이 했는데 왜 제일 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혀주냐. 우리 나이대는 정부로부터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근데 이렇게 되니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이에 정 청장은 “저도 아스트라 맞았다. 백신은 가격차이가 꼭 효과나 효능 차이로 나타나지 않는다. 안심하고 맞으실 수 있다는 말을 자신있게 드린다”고 대답했다.
여전히 일부 고령층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부작용을 우려해 접종을 거부하기도 했다. 충남 천안에 사는 최모 씨(64·여)는 “친한 지인들이 모인 단체 카톡방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입원하거나 사망한 사람이 있다는 뉴스가 자주 공유돼 무섭다”며 “나를 포함해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백신을 맞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 7월부터 50~59세 접종 시작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기준으로 접종 예약자는 약 52만 명이다. △28일 40만 명 △29일 12만 명 △30일 3000명 △31일 23만 명 △다음달 1일 40만 명 △2일 22만 명이 접종 예약을 했다. 주말을 제외하고 평균적으로 하루 약 35만4000명이 예약한 셈이다.
정부는 상반기 중 1300만 명에 대한 1차 접종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다. 27일 0시 기준 1차 누적 접종자는 403만744명이다. 앞으로 약 897만 명이 남은 것이다. 산술적으로는 27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35일 동안 하루에 25만6200명 이상 접종해야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7월부터는 50~59세 일반인과 고등학교 3학년 및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생, 초·중·고교 교사 등에 대한 접종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전 국민 가운데 백신을 한 번이라도 맞은 사람은 7.8%다. 백신 2차 접종까지 모두 마친 사람은 3.9%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