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아 XX” 헉! 장애인에게 인사조차 어려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5일 14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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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날리지(Corona+Knowledge)] <9>

청각장애인 박소해 씨를 만나러 가기 전 기자가 구입한 투명 위생 입가리개. 립 리딩 마스크 대신 궁여지책으로 마련했지만 사용하지 못했다.
청각장애인 박소해 씨를 만나러 가기 전 기자가 구입한 투명 위생 입가리개. 립 리딩 마스크 대신 궁여지책으로 마련했지만 사용하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동아일보 송혜… 아 XX.”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음성을 문자로 바꿔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은 옆 자리에 있던 사람이 내뱉은 비속어까지 제가 한 말처럼 표시했습니다. 문자로 바뀐 제 말은 주술관계가 어찌나 어긋나던지 저조차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지난달 청각장애인 네일 아티스트인 박모 씨(34)를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우리 모두는 일상에서 크고 작은 불편을 참으며 살게 됐습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특히나 더 그렇습니다. 청각장애인인 박 씨에게 코로나19 이후 일상이 된 마스크는 소통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벽입니다. 박 씨는 사람들의 입 모양을 읽어내 소통해 왔지만, 이제 그게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입 모양을 읽어내지 않고도 소통할 방법은 있습니다. 서로 글씨를 써 필담(筆談)을 나누면 됩니다. 하지만 소통의 문턱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한 가벼운 농담도 건네기 어렵습니다. 특수학교에서 일하는 또 다른 청각장애인 정모 씨(41)는 제게 이렇게 전했습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비장애인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 수 있었어요. 입 모양이나 표정, 손짓으로 대화와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문자로 소통하면 꼭 필요한 말만 하게 되잖아요. 뭐라고 썼는지 봐야 하니까 눈을 맞추거나 표정을 살피기도 어렵고요. 주변에서 전처럼 편하게 말을 걸기 어려워하더라고요.”

입 부분만 투명한 아크릴로 된 ‘립 리딩(lip reading)’ 마스크를 착용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박 씨를 만나러 가는 길, 주변 편의점과 마트, 약국 10여 곳을 돌아다녀봤지만 어디에도 립 리딩 마스크는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생활용품점에서 조리사용 투명 위생 입 가리개를 겨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마저 코와 입을 완전히 가려주지 못해 한 번 착용하고선 가방 속에 고이 넣어뒀습니다.

다른 장애인들도 길어지는 팬데믹이 버겁기는 마찬가집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엘리베이터 버튼마다 붙어 있는 항균 필름 때문에 점자로 층수를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한 장애단체 관계자는 이런 경험을 “단순히 불편한 차원을 넘어 자존감과 자립십을 깎아먹는 경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코로나19로 인한 바깥활동 제한이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입니다. 발달장애인은 생활 속 규칙이 무너지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발달장애인의 ‘집콕 스트레스’가 자해나 타해 행동으로 이어져 이들을 돌보는 장애가족까지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재난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지 않습니다. 초유의 팬데믹 상황에서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점자법 개정안이 좋은 사례입니다. 이 법은 항균 필름처럼 시각장애인의 점자 사용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면 국가와 지방자체단체, 공공기관 등이 개선하거나 보완하도록 했습니다.

일상에서도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청각장애인 정 씨는 최근 비장애인 직장 동료에게 들은 말을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앱을 통해 문자로 변환된 말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앞으로 문자 인식이 잘 되게 더 천천히 말할게요. 마스크 때문에 의사소통이 힘들 텐데 힘내요.”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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