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 내겐 최소한의 안전망”…“그 돈으로 집살 기회 늘려달라”

이소연 기자 , 이지윤 기자 , 김윤이 기자 입력 2021-04-01 03:00수정 2021-04-01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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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1주년] 극과극-청년과 청년이 만나다
〈상〉청년임대주택 정책을 보는 두 시선
빈수진 씨(왼쪽)가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 구로구의 청년임대주택 앞에 서 있다. 빈 씨는 “임대주택에 살고 싶어도 못 사는 내 또래 청년들이 아직 많다”며 “청년에겐 더 많은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8년 첫 자가를 마련한 박용화 씨(오른쪽)도 경기 성남시 분당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앞에 서 있다. 박 씨는 “임대주택은 청년 세대 내 빈부 격차만 더 키우는 미봉책”이란 입장을 고수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임대주택 보증금 5000만 원과 6억7000만 원짜리 17평형 아파트. 그것만 따져도 6억 원 넘게 차이 나네요.”

동아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연구팀이 만든 ‘정치·사회 성향 조사’에서 진보에서 4번째로 나온 빈수진 씨(25)와 보수에서 30번째를 기록한 박용화 씨(32). 결과 값은 정 가운데가 중도라면, 보수와 진보는 각각 1∼50까지 나뉘고 성향이 강해질수록 숫자가 작아진다.

두 청년은 집 얘기를 나누다가 흠칫 놀랐다. 생물학적으로 일곱 살 차. 한참 선배긴 하지만 같은 청년들인데. 성향보다 더 멀어 보이는 자산의 차이가 서로에게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수진은 청년임대주택에 산다. 보증금 5000만 원 말곤 자산이랄 것도 없다. 반면 용화는 2018년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 3억5000만 원을 대출받아 경기 성남시 분당에 4억 원짜리 집을 마련했다. 1995년 지은 낡은 아파트라 주위에선 반대했지만 현재 집값은 실거래가로 6억7000만 원이다. 손에 현금을 쥔 건 아니지만 2년 만에 2억7000만 원을 번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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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격차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청년들은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만나자마자 서로 다르다는 걸 알아봤다. 수진에게 집은 ‘생존을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용화는 그보다 ‘자산을 불릴 투자처’란 인식이 강했다. 대화는 초반부터 날이 섰고 서로를 납득하지 못했다.

○ “임대주택은 안전망” vs “빈부격차 더 키워”

▽수진=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수도권 청년임대주택 10곳에 지원서를 냈어요. 9곳 떨어지고 딱 한 군데 붙었어요. 취업만큼 어렵더라고요. 하도 떨어지니 버려진 느낌마저 들었어요. 운 좋게 입주했지만 당장 살 곳 없는 친구들이 더 많아요. 청년임대주택 공급을 지금보다 훨씬 늘려야 해요.

▽용화=아뇨. 전 청년 대상 공공임대를 확대하면 굉장히 나쁜 결과를 낳을 것 같아요. 제가 2018년 처음 집 살 때 가진 돈이 5000만 원뿐이었어요. 부모님도 말렸어요. 집 사려면 3억, 4억 원 대출받아야 하는데, 너무 무리라고요. 그렇지만 전 확신이 있었어요. 집값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저는 집을 사는 경험을 통해 좋은 자산을 건전하게 모으는 프로세스(과정)를 익혔어요.

▽수진=제가 놓치고 있는 경험인 건 맞아요. 그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한편으로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못 보는 것 아닌가요. 제가 용화 씨였다면 과연 그때 내 집을 살 수 있었을까요.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용화 씨는 연봉이 어느 정도 되시나요.

▽용화=5000만∼6000만 원 수준으로 받고 있어요.

▽수진=용화 씨는 연봉이 높아서 이자를 갚아나갈 능력이 있겠지만요. 저는 인턴 월급 150만 원 받아요. 정규직 전환이 돼도 연봉 3000만 원 받으면 많이 받는 거죠. 도전할 근간조차 없는 청년들을 위해 중간 사다리로 임대주택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용화=집을 살 때 소득이 미치는 영향력은 한 줌 재밖에 안 된다고 봐요. 집값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보다 훨씬 높은데, 무슨 수로 월급 모아 따라가요. 저는 월급의 절반을 전부 주식에 투자해요. 지난해 2배 넘는 수익을 봤어요. 근로소득 말고 자산을 불릴 방법을 찾아야 해요.

▽수진=태어날 때부터 환경의 차이가 있잖아요. 서울과 지역의 차이도 크다고 봐요. 저는 고향이 대전인데 그쪽만 해도 분위기가 달라요. 집이 자산을 불릴 투자처라고 생각도 못 해봤어요. 지역뿐 아니라 부모의 조건 등 환경의 격차가 커요. 아예 자산을 불릴 방법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청년들도 있단 거예요. 이들에게는 안전망이 필요해요.

○ “청년에게 ‘내 집’ 꿈을 빼앗지 말아야”

2시간 가까이 이어진 평행선. 청년들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한마디. “이제 우리 세대는 집 마련할 기회조차 뺏겼나 봐요.” 청년들은 어느새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화=그런 청년들에게도 뭐가 도움이 될지 생각해야 해요. 임대주택은 임시적인 안전망일 순 있어요. 지금 청년세대는 집을 마련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잖아요. 그런 미봉책에 예산을 쓰기보단, 차라리 그 돈 아껴서 ‘이 정도까지 해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대출 규제를 완화해주면 좋겠어요. 청년들이 전부 자산가가 될 ‘기회’를 달라는 거죠.

▽수진=솔직히 임대주택에서 안정을 얻었지만 여기서 안주할까 봐 걱정되긴 해요. 임대주택만 전전할 순 없잖아요. 저도 언젠간 집을 마련하고 싶은데, 지금은 대출 규제가 너무 엄격해요. 아직 출발조차 하지 못한 청년들에게까지 장벽을 둬버렸어요. 점점 더 ‘기회’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용화=동의해요. 사회 초년생 대상 장기저리 대출정책이 있긴 해요. 하지만 신혼부부나 저소득층만 대상이에요. 이건 공정하지 않아요. 소득 기준으로 제한을 걸면 오히려 성실한 일개미 청년들이 낙담하게 돼요.

▽수진=아직 주택을 가져보지 못했지만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면 좋겠어요. 성실하게 일하며 빚을 갚아나갈 능력이 있는 청년들은 집을 가질 수 있어야죠.

▽용화=대출규제 완화뿐 아니라 교육도 해법이 될 수 있어요. 지금은 초중고교 12년을 다니며 제대로 된 경제교육을 받지 못해요. 자산을 어떻게 불려 나갈지, 대출을 어디서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요.

▽수진=맞아요. 국영수만 냅다 파는 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 학교는 삶을 가르쳐주는 공간이어야죠. 스무 살 처음 독립할 때 당장 서울 월세가 얼마인지도 몰랐어요. 기댈 곳은 없고 사회에 버려졌다는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용화=교육만큼은 공공의 역할을 믿어요. 사회가 모든 청년에게 집을 줄 순 없어요. 하지만 어떻게 내 집을 마련하고 자산가가 될 수 있는지 배울 수는 있어요. 더군다나 공교육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접근할 기회잖아요.

▽수진=청년임대주택에 지원하면서 앞으로 정보 격차가 자산 격차를 결정지을 수 있겠단 생각을 처음 했어요. 이 제도를 몰랐다면 더 비싼 월세를 내고 살았을 거예요.

▽용화=시간과 예산을 할애해서 청년을 자산가로 키워낼 교육 제도를 마련해야 해요. 결국 진보든 보수든 청년들이 원하는 건 ‘안정적인 경제력’ 아닌가요.

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전 인터뷰 당시 용화만 썼던 ‘기회’라는 단어는 일대일 대화에선 용화가 10차례, 수진이 6차례씩 사용한 공통의 단어가 됐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이들은 청년세대가 집 살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대화 전문을 분석한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모든 청년에게 자산가가 될 기회를 줘야 한다는 한 청년의 말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모든 기성세대가 되새겨야 할 말”이라고 했다.

이제 그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자가 아파트와 임대주택. 하지만 매일 쓸고 닦으며 일상을 꾸려나가는 소중한 장소인 건 누구에게나 같다. 안심하고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거처. 집은 청년들을 보듬어줄 공간이어야 한다. 그들을 내쫓는 벽이 아닌.

이소연 always99@donga.com·이지윤·김윤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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