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라면 신화’ 일군 신춘호 농심 회장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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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분 뒤 도착하니까 짜파구리 해주세요. 우리 다송이가 제일 좋아하는 거니까. 냉장고에 한우 채끝살 있을 텐데 그것도 좀 넣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연교(조여정)가 가정부에게 전화로 부탁하는 대사입니다. ‘짜파구리’는 농심의 인기 상품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함께 넣어 만든 요리입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르자 짜파구리의 인기는 세계로 확산됐습니다.

새우깡(1971년 출시), 너구리(1982년), 짜파게티(1984년), 신라면(1986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아니 이제는 세계가 아는 제품을 개발한 식품기업 농심의 창업주 신춘호 회장(사진)이 27일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빈소에는 가수 윤형주가 조문을 오기도 했습니다. 농심의 대표 스낵인 새우깡의 CM송을 작사·작곡한 가수죠. 1980년대 말에 나온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CM송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농심 스낵은 한국인의 추억과 맞닿아 있습니다.

신 회장은 농심이 세계 속 한국 라면의 형님 역할을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본래 인스턴트 라면은 1958년 일본 닛신(日淸)식품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1963년 삼양식품이 최초로 삼양라면을 개발했죠. 하지만 현재 라면 시장 1위는 농심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농심 신라면은 유럽인의 자부심이라 일컬어지는 알프스 정상 융프라우에서도 팔리고 있습니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한국인 입맛에 맞춘 신라면은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수출됩니다. 지난해 해외에서만 3억9000만 달러(약 45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하네요. 2018년 중국 런민일보는 농심 신라면을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선정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미국 뉴욕타임스가 신라면 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로 꼽기도 했습니다.

사실 라면의 세계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 이미 미국에 수출돼 일본의 ‘라멘’과 차별화되는 맛과 제조법으로 인기를 얻었죠. 이제는 대표 수출 식품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라면 수출액은 6억362만 달러(약 6700억 원)로 전년 대비 29.3% 늘어났습니다. 해외 현지 공장에서 생산돼 곧장 판매되는 물량까지 고려하면 세계 시장에서 한국 라면의 판매액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입니다.

생전 신 회장의 경영 철학은 ‘이농심행 무불성사(以農心行 無不成事)’였다고 합니다. 농민의 마음으로 행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또 평소 가족들에게는 ‘우애하라’를 강조했고, 임직원에게는 ‘거짓 없는 최고의 품질로 세계 속의 농심을 키워달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신 회장은 별세하기 전 감사의 마음으로 서울대병원에 10억 원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농부의 마음이란 곧 땀의 숭고함을 믿는 우직함과 성실함이 아닐까요. 우리 맛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며 우직하게 품질 경영을 실천하고 떠난 그의 여운이 짙습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라면신화#신춘호#농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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