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박근혜 정부 안 봐준 윤석열의 ‘결기’가 지지율 급등 불렀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0일 11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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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 사퇴 후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1위에 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지율 급등을 견인한 핵심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치적 이벤트 직후 지지율이 상승하는 ‘컨벤션 효과’와 뚜렷한 대선 후보가 없는 보수 야권의 지지세가 윤 전 총장에게 몰린 ‘결집 효과’ 등 두 가지를 주된 요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윤 전 총장이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중도층에서도 35%의 지지로 1위를 기록한 점 등으로 미뤄 단순한 컨벤션 효과나 보수 지지층 결집에 따른 정치적 효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간의 여론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윤 전 총장은 과거 보수 야권의 대선 후보들보다는 지역과 성별, 연령을 불문하고 고르게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 그동안 보수 정당 대선 후보들이 고전했던 가정주부층(43.9%)과 진보층(11.2%)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대선 후보로서 윤 전 총장이 지닌 ‘표의 확장성’과 ‘본선 경쟁력’에 주목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윤 전 총장이 검사로 살아오면서 주요 고비마다 일관되게 보여준 ‘결기 어린 결단력’이 국민에게 어필하는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많다.

검찰총장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검사로 일해 온 윤 전 총장을 설명하는 데 있어 결기와 결단력은 핵심적인 요소로 지목된다. 대부분의 검사들이 사건 처리에 있어 사실과 원칙을 중시하지만 특히나 윤 전 총장은 큰 수사에서 윗사람과 의견을 다를 때 절대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전격 사의 표명을 한 가운데 4일 오후 대검청사 인근에는 윤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서 있다.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윤석열 검찰총장이 전격 사의 표명을 한 가운데 4일 오후 대검청사 인근에는 윤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서 있다.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박근혜 정부 때는 국가정보원 댓글 공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적당히 수사하기를 바라는 정권의 뜻을 거슬러 원칙대로 하다가 불이익을 크게 받았다. 윤 전 총장은 수사 과정에서 받았던 윗선의 외압을 국정감사장에서 폭로한 뒤 정직 1개월 징계를 받고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댓글 공작 사건은 2012년 18대 대선 기간 중 국정원 요원들이 상부 지시로 인터넷에 댓글을 남겨 선거에 개입한 사건이다. 당시 청와대는 채동욱 검찰총장과 채 총장이 수사책임자로 임명한 윤 전 총장(당시 여주지청장)이 이 수사를 원칙대로 밀고나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수사 과정에서 윤 전 총장은 2013년 10월 17일 선거 개입 혐의가 있는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과 체포영장을 수사팀장 전결로 발부받아 국정원 직원 4명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고 이 중 3명을 체포해 조사했다. 이에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상부 보고 없이 국정원 직원들을 압수수색하고 체포했다는 이유로 17일 오후 윤 수사팀장에게 직무배제 명령을 내렸고, 윤 수사팀장은 그 다음날 이에 반발하며 연가를 내고 결근했다.

특히 윤 전 총장은 2013년 10월 21일 국정감사장에서 댓글 수사 과정에 검찰 지휘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탄발언을 해 ‘항명 파동’의 중심에 섰다. 윤 전 총장은 당시 “국정원 직원들을 조사하던 중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직원들을 빨리 돌려보내라는 지시가 계속 있었고 국정원 직원들을 석방하고 압수물을 돌려주라는 지시도 내려왔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당시 여당 국회의원이 상부의 외압을 폭로한 이유를 물으며 “검찰 조직을 사랑하느냐, 개인에게 충성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묻자 윤 전 총장은 “저는 검찰을 대단히 사랑한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린다”고 말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어록을 남겼다.

윤 전 총장의 결기와 결단력이 발휘된 가까운 사건은 2019년 우리 사회를 ‘공정 이슈’로 뒤흔든 ‘조국 수사’였다. 검찰총장 임명 직후였던 2019년 8월 당시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감수하고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비리 사건 수사에 전격적으로 착수했다. 결국 이 수사로 윤 전 총장은 자신을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발탁해준 문재인 대통령과 등을 돌리게 되는 ‘정치적 대전환’을 맞게 된다.

결국 윤 전 총장의 대선 지지도가 수직상승한 바탕에는 정치세력이나 이념에 관계없이 죄가 있으면 합당하게 처벌하고 죄가 없으면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는 윤 전 총장의 소신에 대해 보수층과 중도층이 지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윤 전 총장은 자신을 탄압한 박근혜 정부나 자신을 영전시킨 문재인 정부를 가리지 않고 중대한 비리 사건을 강도 높게 수사했다.

평소 삶의 철학일 수도 있었고 검사로서의 원칙이었을 수도 있지만 검사는 거악(巨惡)을 척결해야 한다며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그의 결기와 결단력이 결과적으로 윤 전 총장을 차기 대권 후보로 밀어올린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5일 전국의 만 18세 이상 성인 102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윤석열#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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