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15년 만에 돌아온 나훈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70대 가수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강렬했습니다. 엄청난 카리스마와 무대 장악력, 가슴을 울리는 가창력과 쇼맨십, 화려하고 치밀한 무대 연출에 세대와 지역을 초월해 많은 이들이 열광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언택트 방식으로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가황(歌皇)이라 불리는 가수 나훈아(사진)의 공연 이야기입니다.

지난달 30일 KBS에서 방송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29%의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나훈아는 2시간 40분가량 진행된 공연에서 고향, 사랑, 인생 등을 주제로 29곡의 히트곡과 신곡을 불렀습니다. 클래식, 포크, 헤비메탈, 국악, 사물놀이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면서 트로트의 경계를 넘어 예술적 경지를 드높였습니다.

방송에는 15년 만의 출연이라고 합니다. 8개월 동안 준비하여 출연료 한 푼 받지 않고 공연한 나훈아는 공연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코로나19로 힘든 국민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그가 공연 중에 던진 몇 가지 말들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정치권도 덩달아 술렁였습니다.

나훈아는 국가에서 예술인에게 주는 훈장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 “삶의 무게도, 가수로서의 무게도 무거운데 가슴에 훈장까지 달면 그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다. 예술인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훈장과 공적을 다투어 뽐내는 세태에 울림이 있습니다.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하면 세월에 끌려가는 거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안 가본 데도 한번 가보고 안 하던 일을 하셔야 세월이 늦게 갑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저는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끌고 갈 겁니다.” 도전과 야망을 잃고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이 될 만한 메시지입니다.

나훈아는 노래 중간에 “KBS가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되면 좋겠다”,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다”는 등의 말을 던졌습니다. 그는 “국민의 힘이 있으면 위정자(잘못된 정치를 하는 사람의 뜻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임)들이 생길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야당 정치인들은 이 발언을 가져와서 정부 여당을 공격했습니다. 여당은 정쟁을 위해 나훈아 발언을 곡해하지 말라며 맞섰습니다. 나훈아는 공연을 통해 국민을 위로하고 통합시켰지만, 정치권은 국민을 피곤하게 하고 갈라놓고 있습니다. 나훈아의 쇼는 감동으로 끝났지만, 정치권의 쇼는 꺼림칙합니다.

나훈아는 이번 공연에서 스스로 작사 작곡한 신곡 ‘테스형!’을 불렀습니다. 테스는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말합니다.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상살이, 사랑, 세월에 대해 푸념하며 현자(賢者)에게 질문을 던지는 노래입니다.

정치권과 인터넷 공간에 날 선 말들이 넘쳐납니다. 나훈아의 인기에 얹혀 정치적 셈법을 따지는 아전인수(我田引水)적 행태는 모자람에 대한 자기 고백일 뿐입니다. 정치권은 나훈아를 바라볼 게 아니라 거울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나훈아#15년 만#70대#가수#퍼포먼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