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법률사무소를 찾은 대학생 A 씨는 변호사에게 사연을 털어놓으면서 고개를 떨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거리를 잃게 된 A 씨가 생활비를 벌려고 ‘재택 아르바이트’를 했다가 사기 사건에 휘말려 수사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A 씨는 지난달 초 인터넷 구직사이트에 “재택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며칠 뒤 한 위생업체 대표라는 사람이 메시지를 보내와 “집에서 위생용품을 포장해서 보내주면 한 달에 40만 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A 씨는 이 일을 맡아 했다.
한 달쯤 뒤 업체 대표는 A에게 연락해 “실수로 약속된 돈보다 많은 액수를 입금했다. 직원을 보낼테니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A 씨는 업체 대표가 시키는 대로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마스크를 쓴 남성에게 돈이 든 봉투를 건넸다. 그런데 A 씨에게 일을 시킨 업체 대표와 돈 봉투를 받아간 남성은 경찰이 주시해온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다. 이들은 범죄로 얻은 자금을 세탁하기 위해 A 씨를 끌어들인 것이었다. 경찰은 A 씨가 이들의 돈 세탁 행위를 도우려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A 씨까지 조사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거리를 잃은 아르바이트생들이 ‘비대면 아르바이트’를 하려다가 사기 범행에 연루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올해 2월 18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재택 아르바이트’ 도중 돈을 전달하거나 계좌를 빌려줬다는 이유로 수사를 받게 돼 무료 상담을 진행한 사례가 9건에 이른다 밝혔다.
대학생 B 씨도 지난달 재택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업체 관계자로부터 “돈을 입금해 줄테니 거래처에서 물품을 직접 구입한 뒤 포장하라”는 요구를 받고 그대로 따랐다. 이 업체도 보이스피싱 조직과 관련된 곳이었다. 조직원들끼리 직접 금전을 주고받을 경우 수사망에 포착될 수 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생들을 ‘전달책’으로 쓰는 것이다. B 씨는 사기 방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법무법인 덕수의 황준협 변호사는 “재택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일을 맡았다가 사기방조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요즘 ‘비대면’ 상태에서 낯선 사람에게서 일감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돈을 전달하거나 계좌를 빌려달라는 요구를 받는 순간 범죄를 의심하고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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