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통이 따로 없다”…폭우 그친 후 진흙범벅 집만 남아

  • 뉴스1
  • 입력 2020년 8월 9일 14시 09분


9일 오전 광주 광산구 신창동 한 밭에서 밭 주인이 폭우에 침수 피해를 입은 농작물을 치우고 있다. 2020.8.9 © News1
9일 오전 광주 광산구 신창동 한 밭에서 밭 주인이 폭우에 침수 피해를 입은 농작물을 치우고 있다. 2020.8.9 © News1
“전쟁통이 따로 없죠, 아주. 폭격을 맞아도 이거보단 덜할텐디…, 참 막막합니다.”

500㎜ 이상의 폭우가 퍼붓고 간 9일 오전 광주 광산구 신창동 한 건축사무소 일대는 전쟁통을 방불케 했다.

폭격을 맞은 듯 진흙 범벅의 그릇, 의자, 선풍기, 장화 등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사무소 직원들은 연신 물에 젖은 자재들을 밖으로 빼내기 바빴다.

사무소 안으로 들어가자 온갖 흙탕물이 휩쓸고 간 내부에는 알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고 냉장고는 문이 열린 채 고꾸라져 있었다.

바닥은 그릇과 수저, 온갖 잡동사니가 나뒹굴어 비 피해 현장이라고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했다.

건축사무소 대표 윤남근씨(69)는 “전쟁터가 따로 없습니다. 1979년도에 비가 그렇게 많이 왔어도 안 찼던 곳인데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번 주에도 비가 200㎜정도인가 많이 왔다고 그러던데 아무 문제 없었는데 500㎜는 제 생애 처음입니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전남 담양이랑 장성에서 비가 미친 듯이 내리고 영산강도 넘치니 광주에 쏟아진 빗물이 어디 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집을 덮쳐버렸다”고 말했다.

전날 오전 7시부터 갑자기 불어난 물은 비가 그친 어제 오후에도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와 선풍기, TV가 꼬박 24시간 물에 잠겨있다가 오전 7시에서야 물은 서서히 빠져 그 형체를 드러냈다.

윤씨 가족이 총동원돼 성인 5명이 팔을 걷어붙이고 쉬지 않고 물을 퍼내며 그릇을 씻어내기 바빴지만 치운 흔적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사무소 안쪽 회의실은 불어난 물에 장판까지 들렸다. TV, 소파는 물론 에어컨까지 모두 침수 피해를 보아 다 버려야 할 판이었다.

윤씨의 부인 유영숙씨(62·여)는 “어제는 온종일 냉장고가 물에 둥둥 떠 있었다. 전쟁통도 이런 전쟁통이 없다. 폭격을 맞아도 이것보다는 나았을 것 같다. 24시간 물에 잠겨 있던 것들을 다 치울 생각 하니 벌써 손발에 힘이 빠진다”며 망연자실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풀떼기와 지렁이가 사무소 여기저기에서 참혹했던 침수 현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근 어린이집에서 배수 작업을 벌이던 구청 직원은 영산강과 인접한 지역이고 지대가 다른 곳보다 낮은데다 인근에 농수로가 흐르고 있어 피해가 심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윤씨 사무소 옆 어린이집은 구청 직원들이 지하에 가득 찬 물을 퍼내느라 배수펌프를 2대씩 가동하고 있었다.

윤씨는 건축사무소 앞에 500평 규모의 작물도 일구고 있었지만 이 역시 모두 쓰러지고 꺾여 흙빛으로 물든 지 오래였다.

윤남근씨는 “밭에서 일군 고구마, 참깨, 고추도 내다 팔았는데 올해는 빗물 한 번에 1년 농사가 모두 허탕이 됐다. 집도 밭도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윤씨 가족이 가장 걱정인 것은 앞으로 또 들이닥칠 태풍이다.

그는 “주말이라 인력 지원도 힘들다는데 가족들끼리 힘들게 다 치워놓으면 뭐하나 싶다. 다음주에 또 태풍이 오면 다 뒤집어질텐데 걱정”이라며 “한 번 침수된 곳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나라에서 재발 방지만 신경 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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