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갑질에 질려 노동청 찾았지만…근로감독관 ‘2차 갑질’

  • 뉴스1
  • 입력 2019년 6월 5일 16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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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용역직원 진정에 “대기업이라 부담스러워”
“녹음 않겠다”는 각서 종용…노동위 판결도 무시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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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30대)는 B통신사의 자회사에서 10년 동안 휴대폰을 배송하는 일을 했다. A씨는 개인사업자의 형태로 회사와 물류 용역 계약을 맺었다.

용역사원이었던 A씨는 정식 사원으로 인정받지 못해 수당을 못받고 휴가를 못가는 등 갑질을 당했다고 한다.

참다 못한 A씨는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지난해 10월 ‘근로자 지휘확인 진정’을 제기했다. 그런데 기업의 갑질 부당행위를 조사해야하는 담당 근로감독관은 오히려 A씨를 다그쳤다.

A씨의 담당 근로감독관은 조사를 받는 동안 핸드폰 사용을 못하게 막기도 하며 녹음을 하지 않았다는 각서를 쓰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 근로감독관의 상급자는 “대기업과 진행되는 사항이라 부담이 된다. 당신들이 이기면 다른 근로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며 A씨의 진정에 불성실하게 임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올해 2월1일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은 A씨 진정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민사상 계약으로 확인된다며 행정종결 통보를 내렸다.

이에 A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관련 구제신청을 했고 노동위원회는 2달 뒤인 4월5일 ‘진정인들이 B통신사의 지휘·명령에 따라 일한 근로자이기 때문에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한달 뒤인 5월24일 성남지청은 노동위원회의 판결을 무시하고 A씨의 사건을 행정종결하기로 결정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대해 성남지청 관계자는 “녹음을 못하게 하는 규정은 없으나 그 곳이 독립된 공간이 아니었다. 다른 조사에 임하는 사람이 있어서 개인정보가 들릴까봐 녹음을 못하게 한 것”이라 말했다.

또 ‘대기업과 관계된 사건이라 부담이 된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봐야한다. 당시에는 그런 뉘앙스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A씨의 사례처럼, 부당노동행위를 감독하는 국가 공무원인 근로감독관이 실제 업무현장에서 진정인에게 ‘2차 갑질’을 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5일 이 같이 근로감독관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은 진정인들의 사례를 공개했다. A씨 사례를 포함해 Δ근로감독관이 조사 도중 녹음을 하지 말라며 각서 쓰게 종용 Δ진정인의 회사에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제출 Δ회사의 최저임금 위반에도 ‘형사처벌 실제 1%만 받는다’며 진정인 회유한 사례 등 10건이 공개됐다.

또 5월28일부터 30일까지 직장갑질119와 노동인권실현을위한 노무사 모임 소속 노무사 6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근로감독관이 노동법을 준수하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91.8%가 나온 결과도 공개했다.

직장갑질 119는 “이는 노동사건을 다루는 노무사들의 근로감독관에 대한 신뢰가 어느 수준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결과”라며 “(우리 단체에) 근로감독관과 관련된 제보가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근로감독청을 신설하는 등 근로감독관 제도를 개선해야한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Δ근로감독청 신설 Δ근로감독전담부서 설치 Δ근로감도고간 증원 Δ명예근로감독관 제도 도입 Δ근로감독청원제도 활성화 Δ신고를 이유로 한 불이익 금지 등을 제시했다.

직장갑질 119 관계자는 “고용노동부의 1차 임무이자 존재목적은 근로감독”이라며 “사업장들이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률만 제대로 준수할 수 있다면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신장될 것”이라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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