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군에 효부 났네” 시부모 모시는 일본인 며느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구로즈미 씨, 울진군 시가에 연말까지 체류 계획
7개월째 80대 시부모 식사 준비… 집안일 도맡고 극진한 간병 화제

일본인 구로즈미 후미에 씨가 경북 울진군 북면의 시가에서 아들 전제우 군과 시어머니 장노미 씨, 시아버지 전병민 씨, 딸 전리우 양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오른쪽부터). 구로즈미 씨는 4월부터 시부모를 모셔왔고 올해 말 일본으로 돌아간다. 구로즈미 후미에 씨 제공
일본인 구로즈미 후미에 씨가 경북 울진군 북면의 시가에서 아들 전제우 군과 시어머니 장노미 씨, 시아버지 전병민 씨, 딸 전리우 양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오른쪽부터). 구로즈미 씨는 4월부터 시부모를 모셔왔고 올해 말 일본으로 돌아간다. 구로즈미 후미에 씨 제공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시부모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어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인 남편을 둔 일본인 구로즈미 후미에(黑住文惠·39·여) 씨는 경북 울진군 북면의 시가에서 7개월째 80대의 연로한 시부모를 모시고 있다. 구로즈미 씨는 29일 “시부모님이 연세가 많아 더 늦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며 “잠깐이라도 시부모님과 같이 시간을 보내며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구로즈미 씨는 올 4월 1일 남편 전국중 씨(43)를 일본 도쿄(東京)에 남겨둔 채 초등학생인 두 남매를 데리고 울진으로 건너왔다. 하루 세 끼 시부모의 식사를 직접 챙기고 청소와 빨래, 장보기 등 각종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무릎 관절 등이 불편한 시부모를 위해 농사일을 돕기도 한다. 5월에는 시아버지가 지병으로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하자 매일 왕복 40km 거리를 직접 운전해 오가면서 정성껏 간호했다.

한국인조차 부모 모시기를 꺼리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젊은 일본인 며느리가 80대 시부모를 봉양하자 마을에선 효부라며 칭찬이 자자하다. 구로즈미 씨는 “정말 별것 아니다”라며 “오히려 겉으로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시부모님이 불편해 하시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구로즈미 씨는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일본 요코하마(橫濱)에서 남편 전 씨를 만나 2005년 결혼했다. 당시 전 씨는 안경전문학교에 다니며 안경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구로즈미 씨는 근처 옷가게에서 일했다고 한다. 남편과 같은 안경원에서 일하던 친구의 소개로 만났고, 서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가르쳐 주면서 사랑이 싹텄다. 현재 전 씨는 도쿄에서 안경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구로즈미 씨는 “일제강점기를 겪은 시부모님이 흔쾌히 결혼을 허락해줘서 너무 감사했다”며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한국 문화를 잘 모르고,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찾아뵙지 못해 시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 울진에 왔을 때 시골 생활과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속으로 울기도 했다고 한다.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일일이 스마트폰으로 조리법을 찾아보며 요리했다. 구로즈미 씨는 “시부모님이 좋아하는 생선조림은 이제 많이 만들어 봐서 조금 자신이 있다. 그래도 시어머니가 가끔 음식이 싱겁다고 말하곤 한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울진 부구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리우 양(11)과 아들 제우 군(7)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구로즈미 씨는 “아이들이 오히려 일본에 돌아가기 싫다고 한다”며 “복잡한 도쿄와 달리 울진에는 바다와 산이 있고 자연이 아름다워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아버지 전병민 씨(87)는 “며느리가 손자 손녀를 데리고 와서 봉양을 해주니 너무 좋다”면서 “귀한 선물을 받은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구로즈미 씨는 올해 말 자녀들과 함께 도쿄로 돌아갈 예정이다. 구로즈미 씨는 “남은 시간을 시부모님,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보내겠다”며 “일본에 돌아가더라도 매년 여름방학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시댁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사례”라며 “부모 공경과 경로효친이라는 우리 전통의 미풍양속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광일 기자 light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