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 화재로 인해 통신·금융 서비스가 일시에 마비되는 대규모 ‘통신 대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통신망 화재예방을 위한 법적 규제가 허술한 것이 주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KT 아현지사는 서울 서대문·중구·마포 일대로 연결되는 16만8000 유선회로와 광케이블 220조 뭉치가 설치된 ‘통신 집중국사’이지만, 불이 난 ‘지하 통신구’에는 소화기 1대만 비치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해당 지하 통신구는 현행법상 스프링클러·소화기·화재경보기 등 ‘연소방지설비’ 의무설치 구역이 아니라 화재시 발생한 시민의 불편과 위험에 대비할 법적 장치는 부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현행 소방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 자체가 ‘안전 사각지대’”라고 경고하며 “한번 사고가 나면 국민적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중요시설은 반드시 소방설비를 갖추도록 관련 법을 손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스프링클러 없던 KT 통신구…“현행법 위반 아냐”
25일 서울 서대문소방서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통신실 지하 2m 아래 매설된 16만8000회선의 유선회로와 광케이블 220조 뭉치에 불이 붙으면서 Δ북아현동 Δ냉천동Δ영천동 Δ창천동 Δ현저동 Δ아현 1·2·3동 Δ중림동 Δ만리 1·2가 등 3개 구에 걸친 14개 동의 유·무선 통신이 모두 두절됐다.
이번 화재는 Δ화재가 발생한 지하 통신실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고 Δ광케이블이 매설된 구역으로는 접근이 어려워 진화에 어려움이 컸다.
<뉴스1>이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KT 아현지사는 1998년 5월12일에 등기를 한 건물로 지하 1층, 지상 5층 8881㎡ 규모로 지어졌다. 1998년이면 소방법 등이 완비돼 건물 내 소방시설을 갖춰야 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소방당국에 따르면 화재 발화점으로 추정되는 통신구가 있는 지하 1층에는 스프링클러 같은 자동 화재 진화장비가 없었고, 소화기 1대만 비치돼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처럼 허술한 대비의 원인이 KT가 아닌 ‘소방법’에 있다는 점이다.
현행 소방법은 Δ지하구의 길이가 500m 이상이고 Δ수도·전기·가스 등이 집중된 ‘공동 지하구’ 일 때만 스프링클러·화재경보기·소화기 등 연소방지시설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불이 난 통신 지하구는 통신망과 광케이블 등 통신설비만 설치된 ‘단일 통신구’이고, 그 길이도 150m에 불과해 연소방지시설 의무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행법상 지하구는 층수나 면적에 상관없이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이 아니다”라며 “500m 미만의 단일 지하구라면 화재경보기 설치도 전혀 필요 없어 법적으로 문제를 삼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안전 사각지대 심각…소방시설 의무설치 확대해야”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가기간 통신사업자인 KT와 같은 중요시설의 경우 의무적으로 적절한 소방시설을 갖추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공 교수는 “통신구가 있는 지하 시설은 화재 감지도 어렵고 사람이 진화도 어렵다”며 “특히 통신이 마비되면 국민적인 혼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지하구의 길이와 상관없이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나 분말 소화설비, 청정소화약제 소화설비 등 화재진압설비를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항상 소방 규제를 더 강화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입법 과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안전 사각지대가 발견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수도·가스·전기가 함께 설치된) 공동구는 접속구마다 소화설비를 설치해야 하는데, 통신도 이런 규제를 적용해 안전대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화재의 여파로 인근 지역의 통신·금융서비스가 모두 끊겨 극심한 시민 불편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아현역과 충정로역 등 인근 지하철 안에도 화재 연기가 스며들어 시민의 불편이 이어졌고, 역 내부 물품보관함과 공중전화도 먹통이 됐다.
또 용산 아이파크 일대 상가들은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 일일이 시민들에게 계좌이체를 받는 사태가 연출됐다.
총 45대의 이동기지국을 급파해 통신망 복구에 나선 KT는 이날까지 90% 이상의 피해를 복구할 것을 약속했지만, 무선 통신에 한해서일 뿐 유선전화, 인터넷, 카드결제 복구에는 하루가 더 걸린다. 완전 복구까지는 최대 일주일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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