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눈물의 400억’ 아름다운 기부 老부부, 깊은 울림을 전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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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 “전화 쏟아져 식사도 못해… 이제야 노랑이 누명 벗었네요”


“이른 아침부터 전화 수십 통이 쏟아지는 바람에 아침 먹을 때를 놓쳤네요.”

평생 과일장사를 하며 악착같이 모은 4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고려대에 기부한 김영석(91), 양영애 씨(83·여) 부부는 본보 보도로 기부 사실이 알려진 26일 지인들의 전화를 받느라 아침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동안 이 부부에게 “억척스럽다”고 말하던 아파트 주민들과 시장 상인들이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뜻을 전해 왔다. 이날 여러 언론사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지만 부부는 “할 만한 일을 했을 뿐인데 주변에서 너무 관심을 보여 부끄럽고 부담스럽다”며 완곡히 거절했다고 한다. 부부는 이날 집 밖으로 외출을 하지 않았다.

부부는 전날 서울 성북구 고려대 본관 인촌 챔버에서 기증식을 마치고 귀가해 서로를 바라보며 뿌듯해했다고 한다. 양 씨는 지인들에게 “초등학교도 못 나온 내가 대학생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게 어색하면서도 기쁘다. 이제야 ‘노랑이’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돼 후련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려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노부부의 기부에 대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고파스’ 게시판에는 이날 관련 게시물이 10여 건 올라왔다. 댓글도 200개 넘게 달리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 게시물 중에는 ‘저도 나중에 돈을 벌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등 감동을 받았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게시물 아래에는 ‘과일 장사를 하며 어렵게 번 돈을 기부하다니 대단하십니다’ ‘귀한 돈을 받은 만큼 학교가 값지게 써야 한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명예학장으로 모시자’ ‘김영석 양영애 관을 짓자’는 제안도 나왔다.

고려대 국문과 4학년 김예슬 씨(23·여)는 “학교 식당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내내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를 했다. 내가 그분들의 자녀라면 싫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가족들도 기부에 동참하신 거 같다”고 말했다. 한국사학과 4학년 한순천 씨(26)는 “할머니가 기부하신 큰 뜻에 어긋나지 않게 학교에서 잘 활용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제학부 1학년 이종원 씨(19)는 “앞으로 공부할 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든다”고 말했다.

기부 사실을 알린 본보 기사(2018년 10월 26일자 A12면)에도 부부를 향한 존경을 표현한 댓글이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존경스럽습니다. 노부부님의 뜻대로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꼭 써주세요’ ‘소중한 피와 땀과 눈물의 세월은 아름다운 천사가 되어 각박하고 냉정한 세상에서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거예요’ ‘이런 분이 계시다니 아직 살 만한 세상이네요’ ‘행복하시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기원합니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고려대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은 역대 최대 규모인 400억 원의 기증액을 학생들을 위해 효과적이고 투명하게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고려대는 기부금 집행 전 기부자들에게 활용 방안을 사전 보고하고, 집행 후에는 사용 명세를 정기적으로 보고한다. 기부금 용처를 상세히 밝히는 기부백서를 매년 발간하고 있다. 고려대 관계자는 “부부의 소중한 뜻을 잘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하는 장학금으로 우선 사용하고, 학생들의 주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도록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과일장사#노부부#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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