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귀국 사할린 동포의 ‘씁쓸한 어버이 날’

  • 동아일보

인천 사할린동포복지회관서 고령의 동포 88명에게 카네이션
운영예산 줄며 살림살이 빠듯… 요양보호사 법정 기준에 모자라고 낡은 시설 개보수 작업도 못해

8일 어버이날을 맞아 한국자산관리공사 인천본부 직원들이 인천 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 입주한 사할린 동포 노인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8일 어버이날을 맞아 한국자산관리공사 인천본부 직원들이 인천 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 입주한 사할린 동포 노인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8일 인천 사할린동포복지회관(인천 연수구 원인재로) 강당에서는 어버이날 행사가 열렸다. 한국자산관리공사 인천본부 직원 10여 명이 복지회관에서 생활하는 고령의 사할린 동포 88명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줬다. 사할린동포들은 직원들이 준비한 고기, 과일, 음료를 함께 먹고 마셨다. 직원들은 ‘어머님 은혜’ 등을 불렀다.

매년 여러 기관이나 사회단체 사람들이 가족을 대신해 어버이날 행사를 마련하고 있지만 이곳의 사할린 동포들은 착잡하기만 하다. 영주귀국한 이들 사할린 동포를 위한 국내 유일 요양시설인 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는 1999년 개관할 때 100명이 입주했지만 지금은 88명이 남아 있다. 입주 정원이 90명으로 준 데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평균연령은 85세. 100세도 3명이 있다.

이들의 소원은 여생을 사할린에 있는 가족과 자주 만나는 것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규정상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태어난 사할린 거주 주민만 영주귀국할 수 있다. 이들의 자녀는 거의 대부분 한국인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할린에 자주 가보기도 쉽지 않고, 자녀들이 방문해도 제대로 머물 공간이 부족하다. 운영 예산이 줄어들어 더욱 그렇다.

한국과 일본 정부는 광복 이후 모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할린 잔류 한인들의 영주귀국을 1997년부터 추진했다. 이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사할린에 강제 징용된 사람들이다.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 1세 및 배우자가 거주할 수 있도록 1999년 양국 정부는 사할린동포복지회관을 지었다. 한국 정부가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소유의 땅을 제공하고 일본 정부가 건축비를 냈다. 운영은 대한적십자사가 맡았다.

운영비는 연간 약 13억 원. 한국 정부가 10억 원, 일본 정부가 3억 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양국 정부 협의에 따라 일본 정부는 2016년부터 3억 원 지원을 중단했다. 다만 이들과 사할린에 사는 가족들이 서로를 방문하는 사업은 계속 지원한다. 부족한 운영비 3억 원을 한국 정부는 3년째 보전해 주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2.5명당 1명씩 배정돼야 하는 요양보호사는 법정 기준에 미달한다. 낡아진 시설 개·보수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연로한 사할린 동포들의 병치레가 잦아지면서 치료비를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라고 한다. 그나마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한 자동침대가 없다는 소식에 한국자산관리공사 인천지사 직원들이 성금으로 자동침대 2대를 구입해 이날 전달했다.

지난해 일본 정부 지원으로 사할린에 가서 가족을 보고 온 김묘약 할머니(91)는 “사할린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매년 15명뿐이어서 올해는 갈 수 없게 됐다”며 “가족이 한국을 방문하면 함께 지낼 수 있는 방이 복지관에 생겼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손정희 사할린동포복지회관 관장은 “시설 개·보수를 위해 운영자금을 긴급 투입할 만큼 어렵다”며 “정부의 예산 지원이 인색해 자칫 문을 닫을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 4386명 가운데 현재 생존자는 약 3000명으로 알려졌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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