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붙었다고 헬스클럽 등록한 딸, 문 안 열린다며 다급한 전화가 마지막”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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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희생자들 안타까운 사연
‘4년 장학생’ 수시합격한 예비 여대생 화마에 참변
제천여고 3학년…단짝친구와 맞춘 목걸이로 신원 확인
노모와 딸, 손녀 등 모녀 3대가 한꺼번에 숨지기도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희생자 중에는 지난달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여고생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건물 7층에서 숨진 채 발견된 김모 양(18·제천여고 3학년)이다. 김 양은 수시전형으로 서울의 한 사립여대에 합격해 내년 입학 예정이었다. 공부를 잘해 4년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김 양은 숨지기 전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위로 올라가고 싶은데 문이 안 열린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김 양의 아버지는 “딸이 학교에서 배운대로 고개를 숙이고 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연기를 피하려 내내 고개를 숙인 채 통화했는데 그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족들은 김 양의 검게 그을린 목걸이를 보고 신원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흰색 꽃잎 모양의 목걸이다. 김 양이 얼마 전 단짝 친구와 함께 맞췄다고 한다. 김 양의 어머니는 아직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장례식장을 찾지 않았다. 김 양 어머니는 “우리 딸이 잘못됐다는 게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내가 왜 거기를 가느냐”며 집으로 향했다. 제천여고는 다음 주 애도 기간을 가질 예정이다. 학교 관계자는 “김 양이 기숙사 생활을 했다. 4인실에서 함께 지냈던 다른 친구 3명이 큰 충격을 받은 상태다”라고 전했다.


희생자 중에는 노모와 딸, 그리고 여고생 손녀 등 모녀(母女) 3대가 포함돼 가족들이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민모 씨(49)는 딸 김모 양(18)과 함께 제천 친정을 찾았다. 민 씨 딸 역시 지난달 수능시험을 치렀다. 두 사람은 친정엄마이자 외할머니인 김모 씨(80)와 함께 이날 목욕탕을 찾았다가 한꺼번에 변을 당했다.

김모 씨(64)는 이날 아내(54)와 함께 스포츠센터 4층 헬스클럽에서 운동 중이었다. 오후 4시경 불이 난 사실을 알고 김 씨는 건물 밖으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그는 탈출 당시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병원에서도 멍한 표정으로 라커룸 키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화재 당시 김 씨는 헬스클럽 안으로 연기가 스며들어오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2층으로 내려갔다. 연기 때문에 1층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이 창문 앞에 몰려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창 밖으로 밀어낸 뒤 1층으로 뛰어내렸다.

아내를 찾았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김 씨는 “아내와 같이 내려오려고 했지만 이미 연기를 피해 5층으로 올라가버린 상태라 함께 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오후 4시 20분경 아내와 통화했다. 아내는 “창문이 깨지지 않는다”며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김 씨의 아내는 5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씨는 “아내가 한쪽 눈이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려 많이 무서웠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김 씨의 아들은 “엄마에게 이제야 효도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가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흐느꼈다.

제천서울병원 빈소의 한 20대 여성은 “엄마는 왜 건물 옥상으로 못 갔어?”라고 소리치며 오열했다. 부인의 시신을 확인한 한 남성은 중학교 1학년생인 외동딸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제천명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한 중년 여성이 여동생의 영정 앞에서 “평소 안 가던 목욕탕을 왜 갔느냐”며 절규했다. 그는 여동생 시신을 확인한 뒤 “아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이날 화재 참사로 22일 제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는 취소됐다.

제천=김동혁 hack@donga.com·구특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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