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구석구석을 달리는 울트라 트레일러닝인 트랜스 제주 100km 종목에 참가한 선수들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며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14일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을 오르는 길은 단풍이 물들기 시작해 울긋불긋했다. 솔개가 비상하는 듯한 삼각봉은 단풍나무와 아직 초록빛이 선명한 신갈나무 등이 겹치면서 눈부셨다.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자생 숲을 이룬 구상나무는 상큼한 향기를 뿜어냈고 주목과 섬매발톱나무에는 앙증맞은 빨간 열매가 매달렸다. 남한 최고점 백록담에 서자 발아래로 서귀포 앞바다 무인도인 문섬, 범섬이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한라산 구석구석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대회인 ‘2017 트랜스 제주’가 14일부터 15일까지 10km, 50km, 100km 등 3종목에서 펼쳐졌다. 트레일러닝은 산길, 흙길이나 들판, 해변 등 야생의 자연을 달리는 아웃도어 스포츠로 트레킹, 러닝의 묘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다. 10km 종목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갑마장길에서 열렸고 50km, 100km 코스는 한라산 정상을 오가는 탐방로와 둘레길을 기반으로 했다. 기자는 직접 100km 종목에 도전해 극한 상황을 체험했다.
○ 한계에 도전하는 트레일러닝
햇빛이 사라지자 해발 600m 주변 한라산 둘레길 코스에 어둠이 깔렸다. 머리에 장착한 헤드랜턴이 없으면 한 줄기 빛조차 허용하지 않는 깊은 동굴 속과 다름없었다. 바람이 스쳐 지날 때마다 제주조릿대는 스산한 소리를 냈고, ‘두둑두둑’ 떨어지는 도토리는 마치 발자국 소리처럼 들렸다. 10여 km마다 설치된 체크포인트(CP)는 오아시스처럼 반가웠다. CP는 선수의 통과 기록을 측정하고 음료, 스낵, 과일 등을 제공하는 곳이다. 자원봉사자들은 CP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대회 진행을 도왔다.
현무암을 깨서 만든 둘레길 바닥은 뾰족뾰족해 발바닥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돌길을 걷다가 흙길을 만나면 마치 푹신한 양탄자를 걷는 듯했다. 돌이 물기를 머금어 긴장을 늦추거나 발을 잘못 내디디면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한라산 중간 허리를 한바퀴 도는 코스다 보니 제주지역 크고 작은 하천 상류 100여 개를 건너야 했다.
마지막 골인을 앞두고는 폭풍우가 쏟아졌다. 서둘러 비옷을 꺼내 입었지만 한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신력으로 버티던 체력이 바닥날 즈음 결승선이 보였다. 14일 오전 6시 3분 출발해 15일 새벽에 골인할 때까지 23시간20분45초를 뛰고 걸었다.
○ 세계적 대회 가능성 확인
100km 종목은 레이스 제한시간이 28시간으로 158명(남자 131명, 여자 27명)이 참가해 132명이 완주했다. 프랑스인 바티스트 퓌유 씨(36)가 11시간41분7초로 우승했다. 퓌유 씨는 “화산 분화구인 한라산 전망과 주변 단풍은 최고의 장관이었다”며 “기복이 심한 지형과 날카로운 돌길, 미끄러운 나무뿌리가 많은 코스는 모험과 도전을 의미하는 트레일러닝의 전형이었다”고 말했다.
가시리마을회와 A플랜, 아시아스포츠커넥션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 대회는 31개국에서 800여 명이 참가해 국제대회 면모를 갖췄다. 국내에서 열린 트레일러닝 대회로는 처음으로 ‘라이브 트레일’ 시스템을 도입해 선수 기록, 도착 예상 시간, 선두 주자, 기권 선수 등을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이번 대회는 아시아 지역 트레일러닝 대회를 연결하는 ‘트랜스 아시아(Trans Asia) 시리즈’의 첫 번째 행사로, 내년에는 홍콩에서 2회 대회가 열린다.
안병식 A플랜 대표는 “제주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화산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국인 참가가 많았다”며 “앞으로 트랜스 아시아 시리즈에 싱가포르, 태국도 참여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