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학원장? 튜닝업자? 이웃도 몰랐던 ‘어금니 아빠’ 정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0일 03시 00분


주변에 ‘두 얼굴’ 철저히 숨겨

‘어금니 아빠’ 이모 씨(35)는 이웃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꽁꽁 숨겼다. 만남이나 대화를 피하진 않았다. 하지만 “무슨 일 하냐”고 묻는 이웃들에게 매번 다른 직업을 내세웠다. 자신의 이중생활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이 씨의 의도된 행동이라는 분석이다.

9일 동아일보 취재진이 만난 서울 중랑구 이 씨 자택 주변 주민들은 이 씨의 직업을 작가, 학원장, 자동차 튜닝업자 등 제각각 다르게 알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이 씨와 집 월세 계약을 맺었던 건물 관리인 정모 씨는 당시 이 씨와 마주 앉아 나눈 대화를 정확히 기억했다. 정 씨는 “그때 이 씨가 자기를 방송사에 원고 보내는 작가라고 말했다”며 “입주 직후 이 씨가 현관 앞에 직접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 씨(64)는 “이 씨가 딸과 또래 여학생 2명을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라면 음료수 등을 사러 왔다”며 “믹스커피 큰 통을 자주 사가면서 학원을 운영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주민 박모 씨(57)는 “이 씨가 자신이 살던 건물 옆 차고에서 외제차 튜닝을 자주 해서 물었더니 ‘이걸로 먹고산다’고 해 정비업자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피해자 김모 양(14)의 시신을 야산에 유기한 직후인 3일 서울 도봉구의 한 은신처를 계약하면서 공인중개사에게 자신을 중식당 주방장이라고 소개했다.


여러 직업을 소개했지만 이 씨는 일정한 직업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이 씨가 별다른 직업 없이 후원금으로 생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씨와 아내 최모 씨(32)의 관계도 ‘비정상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주민 박 씨는 “두 부부가 젊은데도 늘 멀리 떨어져 걷고 서로 말도 안 했다”며 “평소 동네 사람들과 인사도 안 하고 지내던 이 씨가 아내가 죽은 뒤 갑자기 인사성이 밝아지고 친근하게 말을 붙여와 황당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 씨가 아내가 숨지기 며칠 전 뜬금없이 ‘아내가 성폭행을 당해 DNA 검사 중’이란 민감한 얘기를 해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아내 최 씨는 지난달 6일 자택 건물 5층에서 투신자살했다. 앞서 같은 달 1일 최 씨는 이 씨의 어머니와 사실혼 관계인 A 씨(60)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강원 영월경찰서에 고소했다. 사흘 후 이 씨와 함께 A 씨 집을 찾은 최 씨는 다음 날 2차 신고를 했다. 경찰 관계자는 “남편 이 씨가 최 씨에게 성폭행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며 A 씨와 성관계를 가지라고 요구해 4일 성관계가 이뤄졌고 이 문제로 부부싸움을 한 뒤 최 씨가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씨가 최 씨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다. 또 A 씨를 10일 성폭행 피의자로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본보 기자가 9일 강원 영월군 A 씨 자택을 찾았을 때 그는 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최 씨 사건에 대해 묻자 A 씨는 강하게 답변을 거부하며 자리를 떴다. A 씨는 이날 채널A와의 전화 통화에서 “성폭행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이날 경찰의 2차 조사를 받았다. 그는 취재진에게 “들어가서 조사받겠다”고 말했지만 막상 경찰 앞에선 제대로 진술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 내내 이 씨는 의자를 잡거나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횡설수설하다 뜬금없이 2, 3일 시간을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날 처음 조사를 받은 딸 이모 양(14)은 “피곤하다” “자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김예윤 yeah@donga.com / 영월=이지훈 기자
#어금니 아빠#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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