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초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모 교사(32)는 최근 교실에서 진땀을 뺐다. 한 남학생이 복도에서 여학생들을 툭 치거나 머리를 잡아당기며 “앙 기모띠”라고 소리치면 여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 김 교사는 교무실에 돌아와 동료 교사로부터 이 말이 포르노에서 “좋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 표현임을 알게 됐다. 인터넷 1인 미디어의 인기 유튜버나 BJ(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쓰는 유행어라는 것이다.
이후에도 ‘뜻 모를 표현’들로 당혹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아이들은 질문을 받으면 시도 때도 없이 ‘응 아니야’라고 대꾸했다. 상대를 무시하기 위해 쓰는 표현으로 이 역시 인터넷 동영상 유행어였다. 남학생끼리도 ‘느금마’(‘너희 엄마’의 사투리를 줄인 말), ‘니에미’ 등의 감정을 자극하는 단어를 쓰면서 서로 다투기도 했다. 김 교사는 “인터넷 막말을 따라 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지도하는 게 버겁다”며 “학생들이 말이 거친 어른들의 말을 닮아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최근 인기 유튜버의 욕설이나 행동을 따라 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일부 1인 미디어 운영자나 BJ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자신의 1인 방송을 통해 거친 욕설 등을 내뱉어 사회적 문제로도 비화된 A 유튜버를 모방하는 사례다. 그의 이름과 함께 ‘따라 하기’라는 단어를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이달 4일 기준으로 1만9200개의 영상이 나온다. 대부분 초등학생이나 청소년들이 A 유튜버의 방송을 보고 그를 따라 하는 행동을 스마트폰 등으로 스스로 제작해 올린 것이다. 영상에서 아이들은 아무 이유 없이 길거리에 누워서 행인들을 놀라게 하거나 “내가 니 애비(아비)다”라며 상대를 자극한다. 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공을 빼앗아 도망치기도 한다.
교사들은 초등학생들의 모방심리가 이런 현상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은평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오모 교사는 “유튜브로 인터넷 방송을 보는 학생이 80∼90%는 되는 것 같다”며 “비슷한 방송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면 또래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아이들이 자극적인 콘텐츠에서 받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1인 미디어에도 영상물 등급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콘텐츠 제작자가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지고 ‘어린이는 따라 하지 마세요’ 등의 문구를 넣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취임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19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인터넷 1인 방송의 선정성이 심각하다는 지적에 대해 “이제는 조금 관계기관과 협의해서 규제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인터넷이 널리, 깊이 침투해 있는데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방치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교육당국도 인터넷 방송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 12월부터 게임, 인터넷상 사이버폭력 예방과 관련해 교육부와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방통위가 협의를 시작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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