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우회 안해도 돼 하굣길 1.2km 줄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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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앞길 완전 개방 첫날 표정

27일 0시경 서울 중앙고 3학년 김태규 군(18)은 청와대 앞길로 들어섰다. 집 근처라 가끔 다니던 길이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온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평소 김 군은 밤늦게까지 공부한 뒤 청와대 동편 계동에 위치한 중앙고에서 청와대 서편 신교동 집까지 오기 위해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학교에서 안국역 앞으로 나와 대로를 지나 광화문을 거쳐 경복궁역에서 다시 효자동 방향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U자형으로 돌아가는 코스의 길이는 약 3.2km. 40분 넘게 밤길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26일부터 청와대 앞길이 24시간 개방되면서 김 군의 하굣길도 약 2km, 30분 정도로 단축됐다. 김 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는데 집에 가는 시간이 줄고 지나는 차도 없어 시끄럽지 않아 좋다”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이 길로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개방 첫날 축하 행사에 참석한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총괄위원장의 기억에도 청와대 앞길은 친근한 ‘등하굣길’이다. 청와대 근처 청운초교 출신인 유 위원장은 “내가 청운초 37회 출신이다. 50년 전 일대의 경기고와 대동상고(현 대동세무고) 학생들이 등하교 때 애용한 길”이라며 추억했다.

24시간 개방 소식이 알려지면서 청와대 앞길은 첫날 밤부터 많은 사람이 찾았다. 26일 오후 늦은 시간까지 가족과 친구끼리 찾은 시민들이 비 온 뒤 쾌적한 여름밤의 정취를 즐겼다. 시민들은 서로를 향해 “정말 여기서 사진 찍어도 되느냐”라고 물으며 즐거워했다. 북악산이 가장 아름답게 나온다는 청와대 정문 바로 앞은 벌써부터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북새통을 이뤘다.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이곳을 찾은 장귀석 씨(68)는 “칠십 먹고 이 시간(오후 9시)에 여기 서 있을 거라 상상을 못했다”며 “죽기 전까지 더 자주 찾아올 거다”라며 벅찬 얼굴로 말했다.

날이 제법 쌀쌀해진 오후 11시 무렵에는 인파가 줄었지만 산책 나온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이곳을 거니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마치 편안한 동네길 같았다. 청운동에 산다는 김미란 씨(47·여)는 “10년을 여기서 살았지만 밤에 와보긴 처음”이라며 “새로운 뒷마당이 생긴 기분”이라고 말했다. 한적함을 틈타 ‘야행(夜行)’을 즐기는 연인들도 눈에 띄었다. 한 여성은 “곳곳에 서 있는 경찰들이 잘 지켜줄 테니 치안을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다”며 웃었다.

하지만 불청객도 있었다. 27일 오전 1시경 술에 취한 60대 남성이 “분통 터져 대통령한테 할 말 있어서 왔다”고 큰소리로 말하며 청와대로 다가갔다. 경찰들이 남성을 막아서는 등 10분 넘게 실랑이가 벌어졌다. 하루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구특교 kootg@donga.com·김배중 기자
#청와대#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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