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13일 경기지역 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 10개교를 폐지하겠다고 밝히자 후폭풍이 거세다. 해당 학교들은 14일 “학교를 강탈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며 반발했다.
외고나 자사고 진학을 염두에 둔 중학교 3학년 학부모들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내년 6월 임기가 끝나는 교육감이 무책임하게 던진 한마디가 혼란만 키운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이 교육감이 임기 내에 재지정 평가를 할 수 있는 도내 외고와 자사고는 없다.
경기 지역 8개 외고와 2개 자사고 측은 불만을 쏟아냈다. 한 외고 관계자는 “일부 학교를 없앤다고 일반고의 문제점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교육 하향평준화로 뭐가 달라지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외고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때 학교설립 승인을 받아 개교해 10년이 좀 지났는데 폐교라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심 외곽에 있는 외고나 자사고는 일반고로 전환된다면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교사 수준이나 시설은 뛰어나 당장은 기우에 불과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집에서 먼 일반고를 굳이 지원할 학생은 많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용인 수지의 학부모는 “지금은 누구나 실력만 되면 용인외고에 가고 싶어 하지만 일반고로 전환되면 그 먼 데까지 누가 자녀를 진학시키고 싶겠느냐”고 말했다. 용인외고가 있는 처인구 모현면은 용인 시내와는 상당히 멀고 오히려 광주 시내와 가깝다. 학교 반경 10㎞ 내에는 중학교 1곳이 있을 뿐이다. 현재의 선(先)지원 후(後)추첨의 일반고 진학 방식이라면 학생 미달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용인외고 관계자는 “교육청이 일선 학교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데에 당혹스럽고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상 교육감이 마음대로 폐지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수목적고인 외고와 자사고는 5년마다 교육청의 학교 운영평가를 받는다. 재지정 철회 결정이 나오려면 이 평가에서 기준 미달의 점수가 나와야 하고, 교육부가 이를 승인해야 한다. 또 다른 외고 관계자는 “교육부에서 관계 법령을 바꿔 (외고를) 폐지하면 몰라도, 운영평가 점수만 가지고 폐지하는 건 불합리하다”며 “대책도 없는 교육감의 말에 학교나 학생, 학부모 모두 동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3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거의 패닉 상황이다. 분당의 중3 학부모는 “수능 절대평가니, 내신 절대평가니 하면서 대입전형을 정하지도 않은 마당에 고교 입시마저 흔들어대면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말이냐”며 “제발 기존 제도를 흔들지나 말았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분당의 중학교 교사는 “입학은 외고나 자사고로 해서 졸업은 일반고 학생으로 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리둥절하기만 할 것”이라며 “교육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일개 교육청이 아닌 교육부나 청와대가 방침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재고나 과학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는 것에 대해 “외고 자사고 차별”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누리꾼은 “외고와 자사고는 폐지하면서 비슷한 성격의 영재고나 과학고는 그대로 둔다면 말이 되느냐”며 “영재고나 과학고를 보내려는 사교육 과열 현상이 일어날 텐데 이건 대단한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임기 후의 일을 불쑥 꺼낸 이 교육감에 대해서도 곱지 않는 시선이 쏟아진다. 이 교육감의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재지정 여부 평가는 안산동산고가 2019년, 나머지 용인외고 경기외고를 비롯한 9개 학교는 2020년이다. 내년 교육감선거에서 재선을 하면 모르되 일단은 후임 교육감이 결정해야 할 일이다. 다른 누리꾼은 “이 교육감. 교육정책을 무책임하게 발표만 하면 되나요? 정말 소통 없는 교육감”이라고 지적했다.
경기도교육청 학교정책과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서 혼란스러울 것으로는 예상하지만, 당장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닌 만큼 일반고 전환에 따른 대책은 교육청과 학교가 공동으로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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