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 장례용 태극기 “직접 받아가라”는 보훈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5일 03시 00분


참전유공자 유족들 두 번 눈물
보훈처 “택배비 예산 반영 안돼”… 수령 못하면 착불 2만∼5만원 내야
‘사망시 태극기 증정’ 예우 무색

“와서 받든지 아니면 착불(택배)로 받으라니요….”

최근 아버지를 여읜 김홍석 씨(53)는 국가보훈처 경기동부보훈지청에 영구(靈柩)용 태극기를 신청했다.

그의 부친은 병사로 6·25전쟁에 참전한 참전유공자. ‘참전유공자 예우 및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월 22만 원의 참전 명예수당(65세 이상) △보훈병원 진료 시 본인부담진료비 60% 감면 △사망 시 장제보조비(20만 원)와 영구용 태극기 증정 △국립호국원 안장 등의 혜택을 받는다. 국립호국원에 안장할 경우 장제보조비는 지원되지 않는다.

김 씨는 “아버지가 늘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것을 자랑스러워하셨다”며 “태극기를 함께 묻어드리면 마지막 가시는 길에 기뻐하실 것 같아 발인 전에 전화로 신청했다”고 말했다. 김 씨 자신도 의무복무 중이던 1985년 훈련 중 부상을 당한 7급 상이유공자다.

하지만 김 씨는 황당한 대답을 들어야 했다. 배달 비용은 지원되지 않으니 직접 와서 받든지, 아니면 착불 택배로 받으라는 것. 김 씨는 “총탄이 빗발치던 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싸운 분에게 택배비조차 지원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분통이 터졌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해 택배비 3만 원을 내고 태극기를 받았다. 묘를 국립호국원 대신 선산에 썼기 때문에 장제보조비 20만 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김 씨는 신청하지 않았다. 김 씨는 “(태극기를) 받고 싶으면 받고, 싫으면 말고 식으로 말하는데 내가 꼭 구걸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택배비(서울 2만 원, 지방 3만∼5만 원)는 예산 반영이 안 돼 착불 택배로 보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훈병원의 진료비 감면 혜택도 제도만 있을 뿐 거의 이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 씨는 “보훈병원이 전국에 서울 부산 대전 대구 광주 등 5곳뿐”이라며 “거리도 먼 데다 대기 시간도 길고, 아버지가 운전면허도 없어 누가 모시고 가지 않는 한 다니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질병 때문에 보훈병원까지 가기는 힘드니 먼저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추후 나라에서 정산해 주면 되는 것 아니냐”며 “동네 카페, 편의점에서도 되는 방식이 왜 보훈 분야에서는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태극기 배달비가 예산에 없다는 것은 직접 받으러 오는 것을 전제로 지원책을 만들었다는 것 아니냐”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께 ‘받을 테면 받고 싫으면 말라’는 식의 무성의한 지원책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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