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연구모임 외압 의혹… 들썩이는 법원

  • 동아일보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 판사
요직 행정처 발령 났다가 취소당해… 일각 “인사 방식 문제삼자 방해공작”
행정처 “연구회 관련 부당지시 안해”… 이인복 前대법관에 진상조사 맡겨

법원의 인사·예산 및 정책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행정처·처장 고영한 대법관)가 법원 개혁을 요구하는 법관들의 학술 모임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대법원은 13일 이인복 전 대법관(61·사법연수원 석좌교수)에게 진상조사를 위임하고, 외압 당사자로 지목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58)을 업무에서 배제하면서 사태 진화에 나섰다.

15일 대법원 등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지난달 9일 정기인사에서 법관들이 선호하는 보직인 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 났던 이모 판사의 인사가 번복된 데서 비롯됐다. 이 판사는 400여 명의 판사가 회원인 법원 내 최대 학술단체 ‘국제인권법연구회’(연구회) 회원이다.

연구회는 최근 ‘사법독립과 법관 인사제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25일 학술행사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한 언론은 “임 차장이 이 판사에게 ‘학술행사를 축소하라’고 지시했다”며 “이 판사가 이를 거부하고 사의를 표명하자 법원행정처 발령을 취소하고 지난달 20일 원래 소속 법원(수원지법 안양지원)으로 돌려보냈다”고 보도했다. 연구회가 대법원장의 법관 인사 방식 등을 문제 삼으려 하자, 행정처가 이 판사를 통해 ‘방해 공작’을 펴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판사는 8일 법원 게시판에 “제가 경험한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옳은지 고심 중”이라는 글을 올렸지만 이후 외부 접촉을 끊고 침묵하고 있다. 임 차장과 행정처는 “이 판사에게 연구회 활동과 관련해 부당한 지시를 한 일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행정처가 과거에도 연구회와 종종 갈등을 빚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연구회는 2014년 ‘국제인권법과 사법’이라는 책자를 내면서 행정처에 예산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행정처는 “왜 비회원인 판사들에게 책을 배포하려고 하느냐”며 연구회가 회원 수보다 많은 700부를 찍는 점을 문제 삼았다고 한다. 행정처는 연구회 측의 항의가 이어지자 결국 책자 발간 비용의 70%를 지원했다. 연구회 소속 A 판사는 이에 대해 “연구회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점을 행정처가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원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의 본질이 ‘양승태 대법원장 흔들기’라고 보고 있다. 양 대법원장은 남은 임기(9월 26일 퇴임 예정) 중에 이상훈 전 대법관과 6월 1일 퇴임하는 박병대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을 차기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할 예정이다. 일부 진보 성향 법관들이 후임 대법관 인선에 영향을 미치려고 대법관 유력 후보인 보수 성향의 임 차장을 공격했다는 이야기다.

배석준 eulius@donga.com·권오혁·김민 기자
#판사#연구모임#외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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