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걸리나” 질문쇄도… 권익위 “포털에 물어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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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시행 D―30… 술렁이는 사회
업무 폭주에 권익위 진땀
사례집 만들 질문 분류도 못할정도… 경찰은 위반신고 서면으로만 받기로
달라진 사회분위기
추석선물 전화에 “안받겠다” 퇴짜… 포상금 노린 ‘란파라치’ 학원 성행
외식-축산업계등 대응책 서둘러
3만원 단품메뉴… 한우 소포장… 초중고 교사, 9월부터 ‘청렴 연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계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김영란법 주무 부서인 국민권익위원회에는 일상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국민들의 질의가 매일 수백 개씩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여전히 모호?…권익위로 질문 폭주

국민권익위 관계자는 “각 기업에서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 문의를 해오는데 많게는 한 곳에서만 질문이 200개씩 오기도 한다”며 “법률 해석만으로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다른 업무는 보지 못할 지경”이라고 전했다. 국민권익위는 언론사, 사립학교, 기업별로 들어온 공통 질문을 유형화해 사례집이나 Q&A집을 만들 계획이었지만 질문 분류 작업도 하지 못한 상황이다.

국민권익위 측은 “권익위 e메일이나 전화, 홈페이지에 문의하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반 변호사들과 권익위 관계자들이 함께 답변을 달아주는 포털의 지식검색을 활용하는 게 상대적으로 빠를 정도”라며 “현재 법제처에서 김영란법 시행령을 심사 중인 만큼 예외 조항 관련 문의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주무 부처조차 정보 제공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김영란법에 대한 정보 격차가 범법자를 양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된다. 시중에는 김영란법 위반 적발 포상금을 노린 파파라치 학원이 성행하고 있다. 금액도 보상금은 최대 20억 원, 포상금은 2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자의적인 법 집행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김영란법 위반 신고는 서면으로만 받기로 했다. 112 신고나 제보가 들어오면 신고자가 실명으로 증거서류와 함께 서면으로 신고하게끔 안내할 예정이다. 다음 달 7일 발간 예정인 김영란법 대응 수사 매뉴얼에도 ‘혐의가 농후하고 증거 확보가 예상될 때 수사에 착수한다’고 명시한다. 일선 경찰관도 수사 착수 전에 반드시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 각계 김영란법 대응책 마련 분주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사회 각 분야마다 분위기는 확연히 갈리고 있다.

공직사회와 대기업에서는 사실상 김영란법이 시행된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공무원들은 추석 선물을 보낸다는 전화가 오면 “안 받겠다”고 거절하는 분위기도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들도 선물 허용 상한선인 5만 원 밑으로 선물을 보내거나 아예 9월 이후엔 선물 예산을 잡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인기 있는 스포츠 경기와 공연이 몰린 하반기에 티켓을 선물하곤 했지만 올해는 서로 간의 부담을 줄이려고 9월 이후 관련 예산은 집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외식업계 및 축산업계도 김영란법 시행에 앞서 서둘러 각종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식당들은 저녁 메뉴와 술값 처리에 대해 대략적인 방향을 잡아가는 상황이다. 저녁 메뉴는 술을 빼고 3만 원 규모에 맞추기 위해 단품 메뉴를 준비하면서 따로 술을 가져오는 손님은 막지 않을 방침이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의 한 한정식집 관계자는 “4만∼5만 원 선인 저녁 코스 메뉴를 3만 원으로 맞추더라도 술이 문제”라며 “매출 상당액이 술에서 발생하는데 술은 몇 병만 시켜도 금액 맞추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외식업계 측은 “일단 9월 말 이후엔 ‘시범타’를 피하기 위해 예약 자체가 거의 사라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축산업계 측은 포장에 들어가는 구성을 바꾸거나 규모를 줄이는 등의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황엽 한우협회 전무는 “공무원들은 아예 선물을 안 받겠다고 해서 일부는 소포장으로 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 교사들은 청탁금지법 연수

김영란법 시행으로 국공립, 사립을 막론하고 초중고교 교사들은 다음 달 초부터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청탁금지법 연수’에 참가하게 된다. 서울 마포구의 한 공립학교에서는 청렴 관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교사의 컴퓨터가 부팅되자마자 청렴과 관련된 Q&A 화면이 뜨게끔 했다. 교사가 한 달에 한 번씩 학부모들에게 청렴 관련 문자메시지도 보내고 있다.

대학들은 재정 상황에 따라 김영란법에 대응하는 모습이 달랐다. 서강대는 김영란법 유관 부서라 볼 수 있는 홍보팀, 입학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심층 교육을 계획하고 있지만, 법률 컨설팅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판단해 로펌들이 외부 민간기업 교육을 나갈 때 쓰는 자료들을 확보해 따로 관련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대학 관계자들에 따르면 “학교를 불문하고 대학교수들은 학내에서 발생할 문제들보다 외부 특강료 부분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김영란법 시행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폭음으로 이어지는 저녁의 긴 술자리 등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두 달 전 첫아이가 생긴 한 대기업 대관담당 직원은 “출산휴가 이후 아이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아이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지연 lima@donga.com·김단비·서형석 기자
#김영란법#권익위#질문#외식#축산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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