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심혈관질환 연구를 진행하는 A 교수는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의 공공 빅데이터 사용을 요청했다가 깜짝 놀랐다. 전체 국민 중 표본 100만 명의 건강 빅데이터를 사용하려면 약 160만 원을 지불하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학술 목적으로 인정돼 50% 할인된 금액이라는 얘기를 듣고 살지 말지 고민에 빠졌다. 해당 데이터는 논문 1편에만 최장 3년까지 사용할 수 있고, 다른 논문에 똑같은 데이터를 사용할 경우 1편당 추가 비용을 약 80만 원씩 내야 한다고 했다. A 씨는 “건보공단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이 제공한 공공 데이터인데 과도하게 장사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건보공단의 빅데이터는 국민이 건강보험에 의무 가입하게 돼 있고 병원 이용 행태가 고스란히 축적돼 있어 규모와 품질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외 정상급 연구진이 공동연구 러브콜을 해오는 것도 양질의 데이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를 관리 운영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들이 연구자들에게 과도한 사용료를 요구해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 열정을 꺾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개인 연구자들 부담 커”
가장 광범위한 건강 빅데이터를 소유한 건보공단은 연구자들에게 120만 원의 기본 사용료와 1GB(기가바이트)당 3만 원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 이용 기간이 6개월을 초과하면 월 20만 원씩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인구 100만 명 표본의 건강 데이터베이스(DB)는 사용료가 약 320만 원, 건강검진을 받는 51만 명의 검진코호트DB는 약 240만 원, 60세 이상 노인 약 55만 명을 특화한 노인코호트DB는 약 320만 원에 이른다. 건보공단은 심사를 통해 공공 목적에 부합할 경우 이용료를 50% 감면해 주고 있다. 국가 과제를 수행하는 경우에도 사용료의 20%를 내야 한다. 2014년 7월 빅데이터 공개 이후 사용료 수입만 약 3억4000만 원에 이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빅데이터는 연구자가 서버에 직접 접속해 데이터를 사용하는 데 하루당 5만 원의 이용료를 내야 한다. 심평원에 따르면 연구자 1명당 서버를 평균 50.1일 사용했는데, 논문을 1편 쓰려면 약 250만 원의 데이터 비용이 드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공적 목적으로 수집된 건강 데이터에 과도한 사용료가 부과돼 연구 의욕을 꺾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건보공단은 빅데이터실 운영 예산으로 이미 약 75억 원, 심평원은 약 12억 원을 각각 편성하고 있고, 건보 재정도 약 17조 원 흑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질병관리본부가 국민건강영양조사 등 빅데이터를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전체 건보 가입자의 전수 데이터를 이용하려면 사용료가 1000만 원을 넘을 수도 있다”라며 “학회나 기관이 수행하는 연구는 괜찮겠지만 개인 연구자들은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 “미래 의료기술 발전에 악영향”
데이터 장사가 장기적으로 미래 의료기술 발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현재 기관별로 흩어진 빅데이터를 융합해야 더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는데 각 기관이 통합보다는 데이터를 활용한 수익 창출과 기득권 강화만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질병관리본부의 유전체정보와 건보공단의 질병 빅데이터를 융합할 경우 개인 유전자 타입별 위험 질병을 예상하고 개인 맞춤형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건보공단과 심평원은 사용료 수수가 데이터 증축, 관리, 분석 인력 운영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건보공단 빅데이터실 관계자는 “공단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공공연구를 진행할 경우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거나 할인해 주는 등 접근성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라며 “우리와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는 대만보다는 데이터 이용료가 싼 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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