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박성민]소방공무원 당락 바꾼 황당한 ‘엑셀복사 오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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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사회부
박성민·사회부
“담당자가 채점 결과를 시도별, 남녀별로 엑셀 파일에 옮기던 중 아래쪽 응시자 명단 일부가 누락됐습니다.”

소방공무원 경력경쟁채용 필기시험 합격자 번복과 관련해 25일 중앙소방학교가 내놓은 해명이다. 청년 10명의 운명을 가를 뻔한 사고의 이유가 단순한 ‘클릭 실수’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응시자 수천 명의 성적 데이터를 담당자 한 명이 ‘복사+붙여넣기’ 방식으로 입력한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전체 채점 과정의 전산 처리가 불가능하다면 입력 과정에 실수는 없는지 반드시 재검토를 해야 한다. 하지만 중앙소방학교 인사채용팀 직원 8명 중 누구도 이를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합격자 발표 하루 뒤인 22일 불합격 응시자 3명이 확인을 요구하기 전까지 중앙소방본부는 채점 오류 사실을 몰랐다.

윤순중 중앙소방학교장은 “처음 발생한 실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1991년부터 진행된 경력채용 시험에서 같은 실수가 없었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뒤늦게 합격 처리된 응시생 6명 중 3명은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

소방 및 구급학 전공자 462명을 뽑는 이번 경력채용의 지원자는 2625명. 21일엔 시험 결과를 확인하려는 지원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홈페이지 접속이 차단되기도 했다. 구직 열기가 뜨거웠던 만큼 합격이 번복된 응시자들은 큰 상처를 받았다. 소방공무원 채용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까지 무너졌다.

하지만 합격자 발표 번복 과정에서도 이들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최근 정부서울청사에 공무원 시험 응시생이 침입해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사건을 의식한 듯 “외부 침입이나 해킹 흔적은 없다”고 강조했을 뿐 응시생들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시도 없었다. 홈페이지에 정정 공지한 합격자 명단 게시물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안전처는 “담당자의 고의 조작 여부를 감찰하고 조직의 신뢰를 무너뜨린 데 대해 책임 소재를 가리겠다”며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담당자 개인의 실수로 문제를 축소한다고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다. 조직 신뢰를 떨어뜨린 ‘주범’은 공무원 채용 시스템을 이토록 허술하게 관리해 온 조직 자체라는 점을 안전처와 중앙소방학교만 모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박성민·사회부 min@donga.com
#소방공무원#엑셀#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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