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밥약’에 등골휘는 선배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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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친분쌓기’ 대학가 전통… 용돈으론 턱없어 막노동 알바까지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중에는 막노동이 제일 수입이 좋더라고요.”

연세대 2학년 윤모 씨(21)는 지난달 3주 동안 공사장에서 속칭 ‘노가다(막노동)’를 뛰어 200만 원을 모았다. 매달 부모님에게 받아쓰는 용돈으로는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한 달 동안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였다. 3월 첫 주부터 신입생들이 밥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는 “벌써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썼다”고 한숨쉬며 “이젠 후배들의 ‘밥약(식사 약속)’ 전화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동국대 2학년 김모 씨(20)도 “이달에만 10명 좀 넘게 밥을 사주게 됐다”면서 “지금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있는데 부담이 된다”며 걱정했다

새 학기 대학가에서는 이른바 ‘밥약 논란’이 뜨겁다. 밥약 문화는 선배들이 갓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밥을 사주며 친분을 쌓는 대학가의 오랜 전통. 하지만 언제부턴가 선배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속 보이는 ‘얌체 새내기’들 때문. 선배들은 밥약에 대비하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돈을 모으는데 당연한 듯 밥을 사라는 후배의 뻔뻔함에 그 후배와 친분을 쌓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각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선배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밥 맡겨놓은 것처럼 굴지 마세요”(3월 20일 건국대 페이스북), “선배들이 밥을 사주는 게 당연한 게 아니다.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해 사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인사는 해줬으면 한다”(3월 10일 한양대 페이스북)….

이런 선배들의 불만에 새내기들도 당혹스러워한다. 하지만 일부 새내기는 후배들도 선배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고려대 신입생 정예은 씨(20·여)는 “선배가 밥을 사면 후배가 최소한 커피 등 후식이라도 사는 게 서로 마음이 편하다”면서 “일부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선배에게 사라고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점점 불편해진다”고 말했다. 한국외국어대 등 일부 대학에서는 3월 한 달 동안 선배들이 밥을 사고 4월에는 후배가 선배를 대접하는 ‘보은의 달’을 만들어 선배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한다.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밥약 논란에 대해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소통을 위해 아주 중요한 행위다. 혼자 밥을 먹는 ‘혼밥’ 문화도 늘어나는 등 대학 새내기들이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면서 나오는 현상으로 보인다. 선후배가 허심탄회하게 이에 대해 논의하는 등 진정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동연 call@donga.com·강성휘 기자
#밥약#혼밥#새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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