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위 ‘모세의 기적’은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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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 울려도 車 끼어들고, 무단횡단으로 진로 막고
소방차 길터주기 훈련 동행해보니

15일 ‘소방차 길 터 주기’ 훈련에 참여한 서울 강동소방서 소방차들이 중앙선을 넘어 달리고 있다. 소방차들은 길가에 불법 주차된 미니버스(오른쪽)에 막혀 있다가 반대편 차량행렬이 멈추면서 간신히 이곳을 통과했다. 서울 강동소방서 제공
15일 ‘소방차 길 터 주기’ 훈련에 참여한 서울 강동소방서 소방차들이 중앙선을 넘어 달리고 있다. 소방차들은 길가에 불법 주차된 미니버스(오른쪽)에 막혀 있다가 반대편 차량행렬이 멈추면서 간신히 이곳을 통과했다. 서울 강동소방서 제공
15일 오후 2시 18분 서울 강동구 광진교 남단 사거리 인근. 좁은 2차로에서 소방차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삐뽀∼삐뽀∼’ 사이렌이 울렸지만 도로 위의 차량들은 못 들은 척 소방차 앞으로 끼어들기 일쑤였다. ‘골든타임’ 확보가 시급한 소방차 앞에서 정체된 도로가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을 기대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소방차에 양보하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수차례 안내방송을 한 뒤에야 차들은 느릿느릿 비켜 주기 시작했다.

민방위의 날이던 이날 서울 강동소방서가 진행한 ‘소방차 길 터 주기’ 국민참여훈련은 당초 20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순찰차와 물탱크차 등 소방차 7대가 천호시장과 암사역 등 복잡하고 좁은 구간 15km를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다는 가정 아래 통과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본보 기자가 함께 탄 소방차가 실제로 훈련을 마치는 데는 목표의 두 배에 가까운 38분이 걸렸다.

소방차 행렬은 훈련 시작 3분 만에 유치원 앞에 불법 주차된 노란색 어린이 통학버스에 가로막혔다. “길을 비켜 달라”는 안내방송을 계속했지만 반대편에서 주행하는 차량들도 비켜 줄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30초 뒤에야 마주 오던 차량이 잠시 멈춰 주는 틈을 타 소방차 행렬이 중앙선을 넘어 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겨우 정체 구간을 벗어나자 2분 만에 복병이 나타났다. 직진하던 맨 앞 순찰차 바로 뒤에 파란색 시내버스가 끼어든 것이다. 뒤따르던 소방차 6대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자칫하면 추돌사고까지 날 뻔했다. 훈련대원들은 사이렌을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 뒤 전통시장인 천호시장 앞에서 한 할머니가 지휘차량 앞을 무단 횡단해 급정거가 반복됐다. 소방차들은 ‘길이 열리면 생명이 열립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달고 있었지만 승용차와 시내버스의 끼어들기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강동소방서 현장대응팀 이운영 소방관은 “미국에서는 사이렌을 켜면 반대 차로 차량들도 멈춘다”며 안타까워했다. 훈련에 동행했던 시민 이완택 씨(61·여)도 “위험한 상황이 계속돼 가슴이 오그라들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로 위 얌체 운전 등으로 소방차가 사고 발생 5분 안에 현장에 도착한 비율은 2014년 기준으로 약 61%에 불과하다. 김연출 강동소방서 현장대응단장은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교차로나 횡단보도에서는 시민 의식이 부족할 때가 많다”며 “소방차가 보이면 사고 현장에 빨리 도착할 수 있도록 길을 양보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훈련은 국민안전처 주관으로 화재 진압이 취약한 전국 243개 구간에서 동시에 실시됐다. 정부는 차종에 따라 5만∼8만 원인 긴급 차량 진로 방해 과태료를 상반기 중 20만 원으로 올릴 방침이다.

홍정수 hong@donga.com·이호재·박성민 기자
#소방차 길 터 주기#도로#소방차#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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