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제주에서 얻은 이웃사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조기잡이 어선에서 일하는 이웃의 어선 일을 도우러 갔다가 들은 얘기다. 태풍 같은 거센 바람이 한 번씩 몰아쳐줘야 바닷속 바닥이 일어나고 물속이 뒤집혀 물고기 먹이가 많아지고 물고기도 많이 모인다고 한다.

사람 사는 일도 비슷한 것 같다. 제주로 옮겨와 환경이 한 번 크게 변하니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일하는 모습이나 생활 패턴도 서울과 다르고 내가 대하는 학생들마저도 서울 학생들과 생각이 다름을 느낀다.

제주로 오기 전 나는 이웃을 몰랐다. 서울에서 직업상 여느 이들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정작 10년 넘게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위·아래층에 사는 이웃의 이름조차 모르고 지냈다. 심지어 앞집 사람이 이사 간 것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야 알게 된 적도 있었다. 서울에 있으면서 어울려 만났던 사람들은 회사 동료나 학교 동창들, 사회에 나와 알게 된 친구나 거래처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살고 있는 ‘동네의 이웃’이 없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내왔다.

제주에 와서 동네 이웃들을 알아가면서 만나게 된 한 친구가 있었다. 도심에서의 직업을 버리고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숙박업을 하기 위해 나보다 1년여 먼저 이곳에 정착한 친구였다. 아이가 둘 있는 단란하고 예쁜 가정이었다. 동네 분들과 어울리며 몇 번 축구도 하고 편하게 알아가고 있는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다른 지인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그 친구가 오후에 세상을 떠났다고…. 이 친구는 숙박을 하는 손님들을 위해 일출관광, 스노클링 등 몇 가지 서비스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 오후 스노클링을 하다가 물에서 나오질 못했다고 한다. 한동안 가슴이 미어졌다. 이 일이 있은 후 내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어떤 일보다 가족과 함께 건강하게 오래 지내는 일상이 행복임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다. 파랑새는 늘 가까이에 있다.

제주에 와서 새롭게 느낀 것 중 하나가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이다. 브로콜리, 방울양배추 등 여러 농작물을 열심히 가꾸는 이웃, 운송업을 하는 이웃, 건축업에 종사하는 이웃, 어선 일을 하는 이웃 등 내 이웃은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다.

서울엔 고액 연봉을 받는 멋스러운 직업이 많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제주의 삶이 서울에서보다는 머리 쓰는 일이 적기는 하겠지만 이 일들도 쉽지는 않다. 어선 일만 하더라도 몇 차례 기회가 있어 직접 일해 보니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씩 밤을 지새우며 일을 해야 한다. 나도 꼬박 21시간을 잠을 자지 않고 일했던 적이 있다. 제주에도 이름 있는 회사나 기관에서 일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분들이 있지만, 가족을 위해 바다에서, 밭에서, 건축 현장에서 일을 배우고 땀 흘리는 내 이웃이 존경스럽다.
※필자(43)는 서울에서 헤드헌터로 일하다 4년 전 제주시 한림읍으로 이주해 현재 대학에서 진로 상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권오병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