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도시의 미각이 ‘자연산’을 익히기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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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는 통영의 가장 큰 섬으로 산과 바다, 미술관과 박물관 등 문화공간이 함께 자리한 곳이다. 매일 새벽이면 “뿌우, 뿌” 소리를 내뿜으며 통영대교 아래를 가로지르는 멸치어선들이 지나고, 고깃배가 매일 찾아드는 새벽시장에는 싱싱한 제철 생선들이 계절마다 자리를 바꾼다. 이곳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사시사철 달라지는 음식으로 체감하는데 봄이 오면 산에서 캔 향긋한 쑥 한 줌에 싱싱한 도다리를 넣은 도다리쑥국 두세 그릇은 먹어줘야 하고, 여름이면 굵은 소금만 송송 뿌려 숯불에 구워내면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바닷장어 한 접시로 보양식을 해결한다. 초겨울부턴 굴과 물메기, 어른 허벅지만 한 생대구가 시장에 나와 아낙네들을 유혹한다.

서울 토박이인 우리 부부는 생생한 자연을 만나기 위해 아침 시장을 자주 찾는다. 여전히 어려운 경상도 바닷가의 억센 사투리에 갸우뚱하면서 좌판을 벌인 할머니들과 즐거운 흥정을 하고, 검은 비닐봉지 가득 쇼핑을 끝낸 뒤 시장 구석의 허름한 밥집에서 인심 좋은 아주머니가 끓여낸 시락국 한 그릇으로 아침을 뚝딱 해결한다.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는 생기 넘치는 에너지와 함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선물한다.

이렇게 소박한 자연의 음식을 온전히 즐기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우리 입맛이 도시의 화려한 미각에 길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처음엔 그렇게 먹고 싶던 퓨전 음식이나 향신료 가득한 음식들이 이제는 전혀 그립지가 않다. 그 비밀은 바로 지역에서 나는 싱싱한 재료의 맛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화려한 셰프들의 다양한 조리법을 배우는 분위기이지만 이곳에서 터득한 최고의 요리법은 바로 ‘요리하지 않는 요리법’이다. 싱싱한 생선을 사러 시장에 가면 할머니들에게 조리법을 묻곤 하는데 그때마다 그분들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기냥(그냥) 무랑 소금이랑만 여면(넣으면) 된다. 물 낄으면(끓으면) 생선 넣고 한소끔 낄이면 끝이다.” 이렇게 간단한 조리법을 들어 봤는가. 제철 생선은 비린 맛도 나지 않고 내장 기름도 살아 있어서 소금 간만으로도 깊은 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더이상의 소스도, 양념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최고의 재료 하나면 요리가 완성된다는 것을 바닷가의 고수, 할머님 셰프들에게 배웠다.

이러한 음식문화를 통해 다시 지역의 삶을 배운다. 복잡하고 분주한, 속보다는 겉을 채우기에 급급한 대도시 삶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단순하고 담백한 삶을 말이다. 펄떡이는 도다리 한 마리에 무와 소금만 넣고 쑥 한 줌만 더하면 최고의 맛을 내는 도다리쑥국 한 그릇 안에도 이렇게 다른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필자(43)는 서울에서 광고회사 잡지사를 거쳐 콘텐츠 기획사를 운영하다 경남 통영으로 이주해 출판사 ‘남해의봄날’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은영
#자연산#통영대교#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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