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아주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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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있는 생활, 많은 사람이 원한다. 나 역시 고향 전북 전주를 떠나 서울에서 회사를 다닐 때 문화생활을 많이 기대했다. 아무래도 뮤지컬이나 연극이 지방보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한 편 볼 시간을 못 내는 게 현실이었다. 물론 서울이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짬을 내면 뭐든 할 수 있었겠지만, 무언가에 쫓기듯 살았던 것 같다. 쉬는 날은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에도 부족했다.

전주에 내려온 지금은 아주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 여기에도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제법 있다.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아들과 상영관을 가끔 찾는다. 또 오롯이 나를 위한 영화를 보고 싶을 때엔 독립영화관에 간다. 보고 나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여운이 오래도록 남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여유를 찾은 건 아니다. 여기도 엄연히 생활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곳이고, 일자리도 부족하다. 때로는 텃세에 부딪혀야 한다. 하지만 버려지는 시간을 되찾으면서 차츰 여유를 찾게 된 것 같다. 서울에선 출퇴근으로 두 시간을 허비했는데 여기에선 다른 주변 도시도 한 시간 안에 갈 수 있다. 서울보다 반절 이상 시간을 아끼게 된다.

아낀 시간이 쌓이다 보니 낚시를 시작하게 됐다. 전북 군산은 바다낚시의 메카다. 차로 30∼40분 거리라 평일에도 방파제 낚시를 했다. 한동안은 낚시에 푹 빠져 광어나 우럭을 잡아 갔는데 집에선 광어나 우럭은 생선 축에도 못 끼니 이런 거 잡아 오려면 가지 말라고 타박했다. 다행히 철마다 참돔, 갑오징어, 주꾸미를 잡아 요새도 낚시를 다닌다. 스노보드도 배워서 전북 무주의 스키장에도 간다.

오래된 동물원도 내가 좋아하는 장소다. 이른 아침에 산책하면 시간이 멈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 산책하면서 사색을 즐기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비단구렁이를 보고 초등학교 때 봤던 그 구렁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전주 한옥마을의 향교에선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을, 전주 외곽에선 멋진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 사람들 대부분은 지방에 내려가면 자기 시간을 많이 가질 거라고 쉽게 생각한다. 서울에 계속 있었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렇게 재미있는 여가를 즐기고 혼자 보기에도 아까운 곳들을 산책할 수 있었을까. 궁극의 여유로움을 느끼는 순간,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필자(42)는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전북 전주로 내려가 남부시장에서 볶음요리 전문점인 더플라잉팬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은홍
#전북 군산#바다낚시#전주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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