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나주시장 부인의 갑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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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는 고려 성종 때부터 조선 말엽까지 호남의 중심도시였다. 조선시대 나주목사(牧使)는 정3품의 높은 벼슬이었는데 나주 시내에는 목사들이 기거했던 살림집 금학헌(琴鶴軒·전남문화재자료 제132호)이 복원돼 있다. 이곳에는 1000년 동안 거쳐 간 300명이 넘는 나주목사 중 단연 으뜸으로 손꼽히는 유석증의 이름을 딴 방이 있다.

▷1610년과 1619년. 그가 두 번씩이나 나주목사로 부임한 사연이 감동적이다. 광해군일기에 따르면 백성들은 유석증이 임기를 마치고 떠난 뒤에도 “다시 내려보내 달라”는 간절한 상소와 함께 십시일반 모은 쌀 300석을 바쳤다. 그만큼 선정을 베푸는 청렴한 목민관으로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것이다. 그가 두 번째로 부임하자 고을 사람들은 이번엔 유임을 위해 쌀 2000석을 모아 바쳤다.

▷나주시 강인규 시장의 부인이 2014년 여름부터 작년 말까지 관내외 행사 참석 때 사회복지과의 두 여성 공무원을 수행원처럼 200번가량 동원한 사실이 행정자치부 조사 결과 밝혀졌다. 2014년 6·4지방선거로 시장에 당선된 뒤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들이 이틀에 한 번꼴로 출장계까지 내고 시장 부인을 모시고 다닌 셈이다. 지방공무원 근무 규칙이나 복무조례 어디를 봐도 민간인 신분인 시장 부인의 수행이나 의전에 대한 규정은 없다. 상사 부인의 ‘행차’를 돕는 사이 이들의 빈자리는 누가 채운단 말인가. 남편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한 부인의 갑질인지, 아니면 자신을 퍼스트레이디급으로 착각했던 순진함 탓인지 알 수가 없다.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민선 지자체장이 무소불위 위세를 떨치면서 비리와 횡포가 끊이지 않는다. 지방권력의 견제장치가 없다 보니 민선 시장 부인이 승진 비리에 연루돼 구속된 사례를 비롯해 가족과 관련된 잡음이 심심찮게 터져 나온다. 과거 ‘장군이 원스타면 그 부인은 투스타급’이란 우스갯소리가 있었다면 지금은 목민관의 부인이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게 된 것일까. 유석증이 살아있으면 현대판 나주목사의 안방마님 행실에 뭐라 말할지 궁금하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강인규 시장#나주#지방자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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