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線 뛰어넘어… 80세 나이 잊고… 대전지역 이색 졸업자 눈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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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새터민 학사 염금순씨
몇번의 죽음 고비 넘기며 학업… “남북 연결하는 영상 만들고싶어”
대전대 80대 석사 정금우씨
계룡시 살며 30km 넘는 거리 통학… “배움에 대한 존경심이 가장 중요”

사선을 여러 번 넘나 든 50대 새터민(탈북 주민)은 학사모를 쓰면서도 새로운 미래를 그리기에 바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결석 한 번 없이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친 80대 고령의 할머니는 ‘배움에 대한 존경심’을 만학의 비결로 꼽았다. 갖가지 사연을 품은 대학 졸업식장의 풍경을 소개한다.

○ “남북 교량 되고 싶다”는 50대 새터민 학사

“남과 북의 양쪽 체제에서 산 경험을 살려 단절된 조국을 하나로 잇는 일에 나머지 인생을 던지고 싶어요.”

18일 배재대 사진영상디자인학부를 졸업한 새터민 염금순 씨(56)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도록 하는 일에 매진하고 싶다는 또 다른 구상에 부풀어 있었다. 염 씨는 비록 50대 중반이기는 하지만 이미 삶과 죽음을 여러 번 넘나들었다. 2000년 한 차례 중국을 통해 탈북하다 잡혔다가 2004년 다시 사선을 넘어 대전에 정착했다. 2008년 암 진단을 받았으나 천신만고 끝에 극복해 냈다.

몇 번 죽음의 고비를 넘으면서 이제 남은 인생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자는 생각에 나사렛대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했다. 북한에서 전문대를 졸업해 편입 자격이 주어졌다. 하지만 전공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가 사진과 영상 분야에 푹 빠졌다. 개인적으로 인터넷에서 정보를 습득하고 사진을 편집해 올려 소통의 매개체로 활용하다가 전공으로 길을 바꾼 것이다.

그는 2014년 배재대 사진영상디자인학과에 편입해 졸업사진전까지 열었다. 염 씨는 “배재대 한류문화산업대학원에 진학해 다큐멘터리 분야를 좀 더 공부한 뒤 남과 북을 하나로 연결하는 작품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며 “큰 성취는 아니지만 젊은 새터민들에게 도전하는 용기를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움에 대한 존경심”이 중요하다는 80대 석사

22일 대전대 혜화문화관에서 석사모를 쓰는 80대 정금우 씨(80)는 서예학과를 다녔다. 충남 계룡시에 살면서 30km가 넘는 먼 거리를 통학하면서 같은 학과 학사 과정에 이어 석사 과정을 끝냈다. 생계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과거의 경험 때문에 시내버스로 통학하면서도 단 한 번의 결석도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다.

공부를 손에서 놓은 시절에도 항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놓지 않았던 것이 그를 만학으로 이어지게 했다. 그는 늦었지만 대전성모병원에서 운영하는 충청주부성인학교에서 초등 및 중학교 학력을 인정받은 뒤 2009년 고교 졸업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해 대학 진학의 길을 열었다.

정 씨는 “사람은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장사를 하든 먼저 깊이 생각하고 모질게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공부를 하면서 더욱 깨닫게 됐다”며 “공부는 늦게 하든, 제 나이에 하든 굳은 마음과 배움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씨는 박사과정 입학을 고민 중이다. 하지만 전서 예서 해서 행서 등 서예의 모든 필체를 숙달하기 위한 노력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하고 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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