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4050직원 상시 구조조정… 위에선 더 자를 사람이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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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퇴 내몰리는 2030세대]―기업들의 속사정

60세 정년 연장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대다수 직장인들에게는‘그림의 떡’이다. 4050세대는 상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고, 2030세대 역시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불안에 떨고 있다. 동아일보DB
60세 정년 연장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대다수 직장인들에게는‘그림의 떡’이다. 4050세대는 상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고, 2030세대 역시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불안에 떨고 있다. 동아일보DB
기업들도 입사한 지 몇 년 안 된 ‘2030세대’까지 희망퇴직 대상에 올리면서 고민이 적지 않다. 하지만 고령층 인력의 구조조정이 한계에 이르고 장기불황이 이어지면서 결국 젊은 직원들마저 회사를 떠나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온 것이다. 올해 이미 세 차례의 희망퇴직을 진행했지만 경영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20, 30대까지 사실상의 퇴직 압박에 나선 두산인프라코어 같은 기업이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조직은 상대적으로 연령의 균형이 맞아야 하는데, 50대는 이미 희망퇴직이 이뤄져 상대적으로 20, 30대가 많다면 추가적으로 고령 숙련자를 내보내기도 어려워 젊은 직원들까지 퇴직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선택의 여지’ 없는 기업들


아직 국내 주요 기업의 20, 30대가 본격적으로 구조조정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년도 경제 상황을 불투명하게 보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2030세대’의 퇴직 압력은 점차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분석업체인 CXO연구소의 오일선 소장은 “기업들은 어려움이 닥치면 우선 자산 매각을 한 뒤 최후에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다”며 “인건비 부담이 고령자에 비해 크게 적은 20, 30대까지 내모는 것은 그만큼 내년도에도 경기 회복을 자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발표한 ‘2016년 최고경영자(CEO) 경제전망 조사’에서도 국내 기업 235곳의 CEO 91.0%는 현 경기 상황을 ‘경기 저점’이라고 평가했다. 대부분의 경영자가 현 경제 상황을 최악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중 ‘머지않아 경기가 회복될 것’이란 응답은 15.3%에 불과했고 75.7%는 현재 경기 상황을 ‘장기형 불황’으로 생각했다.

최근 몇 년간 정부가 기업들에 사실상 청년고용을 압박하는 분위기도 이번 2030세대의 퇴직 압박에 영향을 끼쳤다는 시각도 있다. 청년실업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정부는 기업들에 추가 고용을 요구했고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기업들은 이를 일부 수용했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근 4년간(2010∼2013년) 대기업의 이익은 16.1% 감소했지만 고용은 오히려 2.1% 증가했다.

경총 조사에서도 기업 CEO들은 경영의 애로사항으로 대외경제와 내수 침체 외에 고용부담 증가(응답자의 15%)를 뽑았다. 자금 유동성 부족(6.9%)이나 과도한 기업규제(6.2%), 노사관계 불안(4.4%)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대기업의 인사팀 관계자는 “항상 필요 인원보다 많이 채용하기 때문에 일부 합격자가 중복 합격으로 입사를 포기하거나 퇴사해도 추가로 인원을 채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계열사 지원을 배임죄로 규정하는 것도 인력 구조조정 같은 최악의 상황을 부추기고 있다고 본다. 대기업의 고위 임원은 “계열사가 어려워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해도 유상증자를 하지 않는 이상 지원이 어려워 임직원이 나가는 것을 두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동개혁, ‘역풍’ 맞나

2030세대의 퇴직 압박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에 대한 전망도 엇갈린다.

우선 지금도 기업들이 인권침해 논란이 일 수 있는 방법까지 동원해 직원들을 내모는 상황에서 일반해고 요건이 완화되면 인력 구조조정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이란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 대기업의 한 직원은 “지금도 50대 부장급들은 후배들이 밀고 들어오면 버티기 힘들어 나가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라며 “일부 기업의 사례를 침소봉대해서 쉬운 해고 요건을 만드는 것은 개악”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2030세대의 해고 압력이 오히려 노동개혁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철행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용복지팀장은 “저성과자를 쉽게 해고할 수 없는 현재의 노동법 때문에 인사담당자들이 일정 비율을 줄이라는 지시를 맞추기 위해 20대까지 퇴직을 압박한 것”이라며 “고령자들의 높은 인건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경기 상황에 맞게 운영한다면 오히려 인력 구조조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경험이 ‘상시 구조조정’으로

최근 2030세대의 고용 상황을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와 비교하는 사람도 많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한국 기업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반도체와 조선 철강 등 한국의 주력산업은 성장세였고, 이른바 선진국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업만 하면 취업은 된다’는 생각이 팽배했고, 종신고용이 보장되면서 ‘명예퇴직’은 낯선 단어였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오면서 잇달아 기업들이 쓰러지고 거리는 실직자들로 넘쳐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실업률은 1996년 2.0%(43만5000명)에서 불과 2년 뒤인 1998년에는 7.0%(149만 명)로 치솟았다.

현재 한국은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 상황은 아니지만 지난달 기준 실업률은 3.1%에 이른다. 특히 20∼29세 실업률만 놓고 보면 지난해 기준 9.0%로 1998년(11.4%)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경제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은 외환위기 당시의 ‘학습효과’ 때문으로 보고 있다. 갑작스럽게 구조조정을 직면했던 기업들이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와 비교해 인력 구조조정이 많아진 것을 고용 유연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때는 회사가 망해야만 사람을 자르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비정규직 계약직 등이 많아져 기업이 쉽게 구조조정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외환위기 경험이 있다 보니 기업 내에서 ‘일단 사람을 잘라 비용을 줄였다’는 게 효율적인 방식으로 평가되는 것 같다”며 “앞으로는 핵심 기술이 점차 중요해지는데, 사람을 다 정리하면 위기가 지나간 뒤 사업 기회를 어떻게 잡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애달픈 4050세대

2030세대보다 앞서 상시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은 40, 50대 역시 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조 원이 넘는 손실을 낸 뒤 올해 초 과장급 이상 사무직, 15년 이상 장기근속 사무직 여사원 등 총 1300여 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당초 약 1만1000명이던 사무직 직원이 10명 중 1명꼴로 회사를 떠난 셈이다.

남은 ‘4050세대’ 역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겪고 있다. 올해 현대중공업그룹 임원 300여 명 중 100여 명이 회사를 떠난 가운데 남은 임원들은 내년 1월부터 흑자가 날 때까지 급여 전부 또는 일부를 반납하기로 결의했다. 주요 계열사 6곳(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현대종합상사 현대오일뱅크 하이투자증권)의 사장단 7명도 급여 전액을 반납해 무급으로 일할 예정이다.

올해 희망퇴직을 단행한 대우조선해양도 10월 근속연수가 20년 이상 된 사무직 300여 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과 권고사직을 진행했다. 대우조선이 직원을 대상으로 감원에 나선 것은 2001년 워크아웃(기업구조 개선 작업)을 졸업한 이후 처음이다. 감원 대상엔 부장, 전문위원, 수석위원뿐만 아니라 승진이 늦은 일부 고참 차장도 해당됐다.

내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60세까지 정년이 연장되지만 사실상 ‘그림의 떡’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사오정’ ‘오륙도’가 대세인 상황에서 직장인들의 체감정년은 법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한 직원은 “노조가 강한 대기업 생산직이나 공기업 등에서는 정년연장의 혜택을 보겠지만 대부분의 4050세대는 여전히 구조조정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푸념했다.

정세진 mint4a@donga.com·최예나·이샘물 기자
#구조조정#실업#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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