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139>그녀는 왜 냉면을 먹다가 집에 가버렸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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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와 냉면을 먹다가 혼자 일어나 집으로 가버린 여자가 있었다.

발단은 냉면이었다. 그녀는 비빔냉면을, 남자친구는 물냉면을 각각 주문했다. 그런데 그날도 남자친구의 젓가락이 그녀의 냉면그릇을 침범했다. 절반을 덜어가는 그의 천연덕스러움에 눌러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다.

남자친구가 집 앞까지 쫓아와 볼멘소리를 했다. “그까짓 냉면 가지고 쩨쩨하게 왜 이러냐? 사이좋게 나눠 먹자는 거잖아?”

그녀가 대꾸했다. “내가 냉면 때문에 화낸 걸로 보여? 그동안 내 얘기를 뭘로 들은 거야?”

냉면은 다툼의 계기가 되었을 뿐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정확하게 전하지 못하고, 남자친구는 알아듣지 못하니 그녀로선 번번이 무시당한다는 느낌까지 덤으로 받는 게 당연했다.

적지 않은 여성이 기분을 드러내는 데 모순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부정적인 기분일 경우에 더욱 그렇다. 마음속으로는 상대의 잘못에 따끔한 경고를 해주고 싶으면서도, 괜히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미움을 살까 봐 오히려 친절한 표정을 지어준다.

이러다가 상한 기분을 말할 타이밍을 번번이 놓쳐 버린다. 그러고는 다른 장소에서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그녀 또한 “나는 누가 내 것을 건드리는 걸 싫어해”라고 속마음을 얘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고, 밥을 같이 먹을 때 여러 번 같은 행동을 되풀이했다.

“물냉면이나 비빔냉면, 다 먹어보고 싶은 게 뭐가 잘못이야? 중국집에는 짬짜면도 있는데. 그리고 우리끼리 나눠 먹는 게 뭐가 어때서 그래?” 남자친구의 항변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약이 오른 여성은 과거의 일까지 줄줄이 끄집어냈다. 그녀가 아끼는 책을 가져가서 후배한테 빌려준 일이며, 그녀가 막 구입한 이어폰을 함부로 다루다가 고장 낸 것 등등 이야기할 게 많았다. 하지만 남자친구로선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때는 “괜찮다”더니.

대부분의 남성이 아내나 여자친구의 ‘괜찮다’를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속마음은 ‘괜찮지 않아’일 때도 많다. 여성이 자주 하는 거짓말 1위가 ‘괜찮아’라는 통계도 있다.

경고도 에둘러 표현하는 그들의 특성을 감안하면, 평소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게 불필요한 오해와 마찰을 줄이는 가장 좋은 습관이다. 최소한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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