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보이스피싱 조직, 조폭과 같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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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 조직 41명 구속… 총책 등 2명에 ‘범죄단체 혐의’ 첫 적용
태국-베트남 등에 콜센터 차려놓고 유명 캐피털업체 사칭하며 돈 가로채

평범했던 30대 가장 김모 씨(36)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이 되는 데는 1년이면 충분했다. 김 씨는 처남의 고향 후배인 전모 씨(35) 등과 한국인 10여 명을 국내에서 끌어모아 태국 푸껫을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점으로 삼았다. 김 씨는 실적에 따라 우수 조직원들에게 성 접대와 요트 관광 등을 미끼로 조직 관리를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체계적으로 조직을 관리한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 김 씨와 부사장 원모 씨(33)에게 범죄단체 조직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이 보이스피싱 수사에서 ‘조폭사건’에 적용하는 범죄단체 혐의를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태국과 베트남 등에 콜센터를 차려 놓고 유명 캐피털 업체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 김 씨와 부사장 원 씨 등 2개 조직 41명을 구속했다고 2일 밝혔다. 경찰은 조직의 핵심인 김 씨와 원 씨에게 사기 혐의와 함께 ‘범죄단체 조직’ 혐의(형법 114조)를 추가했다. 사기죄의 최고 형량은 징역 10년이지만 범죄단체 조직죄가 적용되면 5년까지 가중 처벌될 수 있다.

김 씨와 원 씨는 2013년 7월 푸껫에 콜센터를 차렸다. 김 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몸담은 지 3주밖에 안 된 ‘초짜’였지만 초기 자본금 2500만 원을 투입해 총책을 맡았다. 이들은 중국 칭다오의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이들이 불법으로 모은 개인정보와 대포통장 계좌를 공유하는 등 범행 수법을 전수받았다. 국내 유명 캐피털 업체를 사칭해 수수료, 보증보험료 등의 명목으로 돈을 가로채는 수법이었다.

총책 김 씨가 조직 관리를 맡고 부사장 원 씨는 개인정보 관리, 시나리오 작성 및 직원 관리를 맡았다. 전 씨는 팀장을 맡아 조직원 포섭, 교육 등을 책임졌다. 전 씨는 “한 달에 500만 원을 벌 수 있다”며 고향 선후배와 친구를 꾀어 조직을 키웠다. 이들은 경찰이 들이닥치는 상황에 대비해 콜센터를 3분 안에 여행사로 위장하도록 매뉴얼을 마련하고 실전 연습까지 하며 철저히 준비했다.

김 씨와 원 씨의 동업 관계는 1년 만에 어긋났다.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김 씨와 원 씨 사이가 틀어졌고 결국 지난해 6월 태국 조직이 와해됐다. 원 씨는 태국 조직이 와해된 후 베트남으로 넘어가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을 꾸렸다. 경찰은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 수사 과정에서 태국과 베트남 조직의 단서를 확보해 김 씨와 원 씨 등을 검거했다. 김 씨는 태국 조직이 와해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싱크대 회사에 다니던 중이었다. 경찰은 해외로 도피했거나 국내에 은신한 다른 조직원 9명을 추적 중이다.

김호경 whalefisher@donga.com·권오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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