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119>남의 시선에 예민하지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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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화보 촬영을 하던 사진가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숲에 숨어 망원렌즈로 여자 모델이 쉬는 모습을 몰래 찍어 놀려줄 요량이었다. 그런데 카메라에 눈을 댄 순간, 자기가 놀라고 말았다. 간식을 먹던 모델이 어느새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모델뿐 아니라 일반 여성도 남의 시선에 예민하다. 자신을 보는 남들의 눈길을 귀신처럼 알아챌 때가 많다. 어떤 남자는 짝사랑하는 여성 동료가 퇴근하는 모습을 20층에서 내려다보는데 그녀가 갑자기 돌아서서 한참 동안 올려다보는 바람에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여성은 ‘남에게 보이는 나’를 많이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 거울을 애용하는 데다 늘 주변을 살피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주변을 의식하기는커녕 전혀 개의치 않는다. 여자들끼리 몰려다닐 때가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늘 횡대로 통행로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신도시의 한 남성은 자전거를 타다가 아홉 명의 여성이 도로 양쪽을 모두 장악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 인원이 횡대로 걷기에는 산책로가 좁으니 자전거도로까지 나온 것이다.

여성들은 희한하게도 이럴 때는 남을 의식하지 못한다. 벨을 울려도 듣지 못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행진은 방해를 받아도 곧바로 횡대로 복원된다. 남의 시선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일 게다.

남자가 아내에게 물어보니 “모르겠다”고 한다. 여자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란다. 그래놓고는 한마디 덧붙인다. “사이좋게 지내려고 그러는 것 아닐까.”

‘사이좋게’가 힌트다. 소속감과 안정감이 그들로 하여금 누가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횡대를 만들어낸다. 혼자만 뒤떨어져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아들이기 싫은 것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자동차를 몰고 들어오는데 유모차를 미는 여성 넷이 나란히 진입로를 걷는 중이었다. 엔진 소리에 일제히 뒤를 돌아봤지만 횡대를 종대로 바꿔 도로를 공유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뒤에서 난데없는 경적 소리가 크게 울렸다. 따라온 흰색 자동차 운전자의 신경질이었다.

일렬종대로 헤쳐모인 유모차 대열을 지나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흰색 차에서 또래의 여성이 내린다. 혼자임에도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깜짝 경적을 선물한 장본인이다.

여자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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