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미용실에 고소당한 아이돌 기획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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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홍보대행사 등 9곳 “외상 甲질에 1억3000만원 못받아”

지난해 3월 연예기획사 A사 대표인 박모 씨(39)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B미용실을 찾았다. 박 씨는 외상으로 소속 연예인 7명의 머리 손질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그는 “지금 5인조 신인 걸그룹이 데뷔를 앞두고 있다. 이용 날짜와 금액을 적은 확인증만 주면 나중에 수익금으로 외상값을 갚겠다”고 말했다. 미용실 측은 같은 해 3월부터 7개월간 방송국과 공연장을 따라다니며 A사 소속 연예인들의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을 담당했다.

그러나 A사는 해당 걸그룹이 데뷔한 뒤에도 외상값을 갚지 않았다. 미용실 측이 대금 결제를 요청하면 “해외 공연 준비로 바빠 지금 당장 돈을 줄 수 없다”며 차일피일 미뤘다. 한 차례 100만 원을 준 것이 전부였다. 나중에는 아예 “돈이 없다”며 발뺌했다. 결국 미용실 측은 지난달 24일 용역대금 1932만 원을 갚지 않은 혐의로 A사를 서울 수서경찰서에 고소했다. 경찰에 따르면 A사와 ‘외상계약’을 체결한 뒤 돈을 받지 못한 업체는 이 미용실을 비롯해 홍보대행사 안무팀 사진관 등 9곳에 이른다. 업체들이 주장하는 피해금액은 1억3000만 원에 이른다.

기획사와 연예인들이 이용하는 미용실 홍보대행사 스튜디오 등은 이처럼 ‘갑을 관계’로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A사처럼 신생 기획사들은 대부분 “소속 연예인이 뜨면 돈을 주겠다”며 외상거래를 원한다. 잘나가는 연예인을 둔 기획사는 홍보효과를 이유로 대금 지불을 미루곤 한다. 관행상 계약서 대신 구두로 약속하거나 간단한 확인증만 만들기 때문에 관련 업체들은 일방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기획사들은 고의성이 없다고 항변한다. 연예인 데뷔가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렵고 아이돌그룹의 성공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기획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국내 350여 개 기획사에서 활동 중인 연습생은 1000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방송에 데뷔하는 연습생은 30% 미만이고 기획사가 투자비를 회수할 정도로 성공하는 사례는 5%에 못 미친다. A사 관계자도 “지난해 진행한 공연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대금을 주지 못했다”며 “소속 걸그룹의 앨범이 나오면 방송 출연도 하고 행사도 뛰어서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업체들의 과열 경쟁도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강남의 한 미용실 관계자는 “청담동에만 30곳이 넘는 미용실이 있다 보니 다들 연예인 고객을 유치해 홍보효과를 보려고 한다”며 “만약 기획사 사이에 좋지 않은 소문이 나면 손님이 끊기기 때문에 외상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업체들이 법적 대응에 나서도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사기 혐의를 입증하려면 계약서 등 자료가 있어야 한다. 구두계약으로는 혐의를 입증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 대신 민사상 소액심판을 통해 양측이 서명한 확인증을 토대로 재산 압류 및 지급을 강제하는 방법이 있다.

천호성 thousand@donga.com·정윤철 기자
#기획사#아이돌#미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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