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복 무게 10kg 구형… “이걸 입고 어떻게 순찰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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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총사고 경찰 순직 이후 일선 지구대에 배포된 방탄복 입어보니…
경찰 타격대가 쓰던 중고품… 이음매 벌어지고 방탄판 없는 옷도
예산갈등에 신형보급 시간 걸릴듯

“아이고, 무식하게 생겼네.”

16일 오후 서울 시내 한 경찰서 지구대 경찰관들이 검은색 방탄복을 살펴보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27일 경기 화성시 총기사고로 파출소장 이강석 경정(43)이 순직하자 정부와 경찰이 일선 파출소 및 지구대에 방탄복을 내려보내겠다고 한 뒤 도착한 방탄복이다. 본래 경찰 타격대가 보유하고 있던 방탄복 4000여 벌 가운데 1000벌이 전국에 배포돼 각 지구대별로 1벌 정도 비치됐다. 하지만 무겁고 활동성 떨어지는 방탄복을 급하게 ‘돌려막기’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무게는 10.2kg. 키 181cm인 기자가 입어 보자 방탄복 하단이 배꼽 위에 걸쳐졌다. 소, 중, 대, 특대 등 4가지 크기 가운데 작은 것이 온 것으로 추정됐지만 어디에도 크기 표시는 적혀 있지 않았다. 무게 탓인지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다. 전면 왼쪽에 권총용 탄창주머니 4개, 오른쪽에 소총용 탄창주머니 2개가 있었지만 다른 수납공간은 없었다. 한 경찰관은 “무겁기도 하고, 무전기 꽂을 공간이 없어 실전에서 쓰기 불편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내려온 방탄복 가운데는 이음매가 벌어지거나 심지어 등쪽 방탄판이 없는 불량품까지 있었다.

서울시내 모 지구대 최모 경위는 “이번 사고로 경찰도 총기 사고에 노출돼 있다는 게 드러났는데, 군인이 쓰는 것처럼 가볍고 활동성 좋은 것을 지급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한 경찰 간부는 “지금 상태로는 총기사고 신고가 들어와도 직접 해결하려 하지 말고 타격대가 진압할 때까지 무조건 시간을 끌어야 인명 사고가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경찰청은 이번 방탄복 지급은 응급조치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5kg인 신형 방탄복 1만 벌을 구입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에 160억 원의 추가예산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재부가 “정규 편성된 예산을 활용해 구입하라”며 난색을 보이고 있어 경찰 방탄복 지급에는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기정 skj@donga.com·이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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