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재력가의 65억 금괴, 건물 공사업자가 ‘슬쩍’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사무실 바닥에 묻힌 130개 발견
고급 외제차 굴리며 딴살림 차려… 배신당한 동거녀가 발설 결국 들통
주인은 가족에 안알린채 2003년 숨져

인테리어 업자 조모 씨가 8월 서울 서초구의 한 사무실에서 훔친 금괴 130여 개 중 일부. 경찰은 조 씨로부터 금괴 40개(시가 19억 원 상당)와 현금 2억2500만 원을 압수했다. 서울서초경찰서 제공
인테리어 업자 조모 씨가 8월 서울 서초구의 한 사무실에서 훔친 금괴 130여 개 중 일부. 경찰은 조 씨로부터 금괴 40개(시가 19억 원 상당)와 현금 2억2500만 원을 압수했다. 서울서초경찰서 제공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8월 19일 오후 9시경 인테리어 업자 조모 씨(38)는 화재로 불탄 서울 서초구 한 사무실의 복구공사 도중 불에 탄 붙박이장을 뜯어냈다. 한데 그 안에 라면 상자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나무 궤짝이 바닥에 묻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올리려다 허리가 삐끗할 뻔했다. 혼자 들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같이 일하던 인부 2명과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놀랍게도 금괴 130여 개가 신문지에 하나하나 싸여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덜컥 겁이 났다.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걷어낸 신문지 사이로 번쩍이는 금괴를 보고 욕심이 생겼다. 조 씨는 금괴 3개를 꺼내 인부 2명과 1개씩 나눠 가졌다. 나머지는 다시 신문지에 싸서 제자리에 넣어뒀다.

집에 돌아왔지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는 동안 거울에서 금괴가 번쩍였다. 동거하던 여자친구 김모 씨(40·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날 밤 여자친구와 다시 사무실을 찾아 묻혀 있던 금괴를 모두 가져와 침대 밑에 숨겼다. 개당 1kg이면 시가 4600여만 원. 하룻밤에 시가 65억 원 상당의 금괴가 굴러들어왔다. 공사를 의뢰한 집주인 김모 할머니(85)와 그의 자식들도 금괴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이보다 완벽한 범죄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서둘러 20여 일 만에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금괴는 공사를 의뢰한 집주인 김 할머니의 숨진 남편 박모 씨의 것이었다. 서울 강남 일대에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던 박 씨는 1960년 후반 한남대교가 준공된 뒤 교통량이 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평소 유일하게 믿을 만한 투자처는 금뿐이라고 생각했던 박 씨는 재산의 상당 부분을 금괴로 바꿔 보관했다. 2000년 박 씨는 사무실로 개조하기 전 안방 왼쪽 붙박이장 밑에서 궤짝을 꺼내 금괴를 가족들에게 한 차례 나눠준 뒤 치매에 걸렸다. 2003년 숨지기 전까지 박 씨는 금괴를 꺼낸 붙박이장 바로 오른쪽에도 금괴가 있다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했다. 가족들도 이미 한 차례 왼쪽 붙박이장 밑에서 금괴를 꺼냈는데 설마 오른쪽에도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벼락부자가 된 조 씨는 돈을 흥청망청 썼다. 66개를 금은방에서 처분한 뒤 생긴 돈으로 고급 외제차를 구입하고 집도 샀다. 20억 원을 지인 사업에 투자하기도 하고 하룻밤에 유흥비로 수백만 원을 탕진했다.

조 씨의 범행은 여자친구를 배신하려다 발각됐다. 벼락부자가 된 조 씨는 변심해 새 여자친구를 만나 범행 4일 만에 훔친 금괴를 모두 가지고 동거하던 김 씨의 집을 나왔다. 배신당한 김 씨는 심부름센터에 조 씨와 금괴를 찾아줄 것을 요청했고 금괴라는 단어가 꺼림칙했던 심부름센터 직원이 경찰에 제보하면서 조 씨의 범행은 드러났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9일 조 씨를 특수절도 등 혐의로 구속하고 공범인 인부 2명과 금괴를 매입한 금은방 업주 3명, 동거녀 김 씨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19억 원 상당의 금괴 40개와 현금 2억2500만 원 등도 압수했다. 나머지 20여 개의 금괴는 행방을 추적 중이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치매 재력가 65억 금괴#건물 공사업자#금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