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힘들고 나도…” 10년 병수발 아내, 남편과 자살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9일 1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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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힘들고 나도 힘드네. 자식들에게 부담 줄 것 없이 함께 저 세상으로 갑시다."

뇌 암 수술의 후유증으로 신체 일부가 마비되고 치매증상까지 나타난 남편 강 모 씨(62·대전시 대덕구)를 10여 년째 병간호하던 아내 황 모 씨(61). 그는 9일 오후 10시경 남편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곤 남편에게 "당신 너무 힘들지요. 우리 결심합시다"라고 말했다. 남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황 씨는 상시복용용으로 서랍에 넣어두었던 수면제 10알을 꺼내 남편과 반씩 나눠 먹었다. 이어 베란다에 번개탄 4개를 지핀 뒤 거실에서 남편과 함께 누웠다. 강 씨는 아내에게 "팔베개를 해달라"며 "저 세상에서 만나자"고 한 뒤 잠을 청했다. 황 씨도 잠에 들었다.

다음날 오전 10시 경 황 씨는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보니 남편이 자신의 팔을 벤 채 조용히 숨져 있었다. 남편에게 팔베개를 해 주었던 김 씨의 오른 팔은 화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그는 생명은 건졌다.

황 씨는 베란다에 있는 타버린 번개탄을 치운 뒤 대전 근교에 사는 아들과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알렸다. 자녀들도 오랜 병마와 싸우던 아버지가 자연사한 것으로 믿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까지 단순 변사 사건으로 파악했다. 황 씨가 "자고 일어나보니 남편이 숨져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일산화탄소 중독 소견이 나왔고 수면제가 검출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가스안전공사, 경찰 과학수사팀이 3회에 걸쳐 도시가스 누출 여부를 조사했지만 가스 누출은 없었다. 경찰이 황 씨를 재차 추궁하자는 황 씨는 전날 있었던 일을 소상하게 털어놓았고 "내가 남편을 죽인 셈"이라고 흐느꼈다.

황 씨는 10여 년 간 병 수발하면서 위 절제수술과 우울증까지 앓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덕경찰서 김종윤 강력팀장은 "오랜 병간호에 지쳐 남편과 함께 동반자살까지 하려했던 점은 안타깝지만 황 씨는 엄연한 범죄행위를 저질렀기에 자살교사 등의 혐의로 불구속입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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