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믿고맡길 ‘이모님’ 찾으려면 최소 50명은 만나봐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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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고민 없는 사회로]
<中>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베이비시터 구하기

“지금도 작년 여름을 생각하면 속이 타요. 육아 휴직 기간은 끝나 가는데, 어린이집 입소 순서는 안 돌아오고…. 애 맡길 곳은 없는데 믿을 만한 베이비시터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고…. 하루하루 복직 날짜가 다가올 때마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죠. 일을 그만둘까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기예요.”

회사원 윤지영(가명·31) 씨는 지난해 6월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고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기 직전 한 달 동안 베이비시터를 구하느라 진땀을 뺐기 때문이다.

○ 1년 가도 자리 없는 어린이집


“어린이집 입소 대기가 길다는 지인들 조언을 듣고 임신 3개월 때 서울시 보육포털서비스에 어린이집 입소 대기 신청을 했어요. 집 근처 20여 개 어린이집에 모두 대기를 걸었죠. 그런데도 아이가 돌이 지나도록 아무데서도 입소 순서가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윤 씨는 “영아반을 운영하는 곳이 많지 않다 보니 자리가 나도 다자녀 가구나 저소득층 같은 추가 조건이 붙어야 순서가 돌아오는 듯했다”며 “맞벌이 조건만으로는 입소 순서 우위를 확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당초 아이를 맡아주기로 했던 친정어머니가 허리 수술로 몸져누우면서 윤 씨는 복직 한 달여를 앞두고 급히 베이비시터를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친정엄마라는 기둥이 없어지니 믿고 아이를 맡길 곳이 정말 아무데도 없더군요. 아직 걷지도 못하고 말 한마디 못하는 애를 누구에게 맡기겠어요. 밥은 제대로 줄지, 기저귀는 제 때 갈아줄지…. 뉴스엔 온통 흉흉한 얘기뿐인데 너무나 막막한 심정이었어요.”

○ 정부 베이비시터 서비스 “그림의 떡”


윤 씨는 수소문 끝에 정부가 운영하는 ‘아이돌봄 서비스’는 그래도 믿을 만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성가족부가 주관하는 아이돌봄 서비스는 주로 지역주민들이 돌보미로 활동하는 프로그램. 활동 전 정부가 제공하는 교육을 이수해야 하고, 정부가 직접 성범죄 경력 등을 확인해 신상을 관리하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직접 문의한 결과 아이돌봄 서비스는 유명무실한 제도였다. 윤 씨는 “구청 담당자에게 문의해 보니 지역 내 아이돌봄 베이비시터는 60여 명에 불과했다”며 “시간제 돌봄까지 포함해 최대로 잡아도 300가정 정도만 매칭이 가능한데 이미 대기 가정 수가 1000곳이 넘는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전했다.

특히 윤 씨 같은 직장맘이 필요로 하는 종일제 돌봄 서비스를 받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종일제 돌봄의 경우 고용주인 윤 씨에게 면접을 볼 권한이 없고 구청에서 보내주는 사람을 무조건 믿고 써야 한다는 것도 한계였다.

○ 공인 정보 없는 민간 베이비시터

결국 윤 씨는 민간 베이비시터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미 베이비시터를 쓰고 있는 지인들에게 ‘소개를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면, 동네 아주머니들을 붙잡고 애 봐줄 사람을 수소문하기도 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도 ‘베이비시터’를 검색해 업체 전화를 수십 통 돌렸고, 엄마들이 주로 찾는 인터넷 카페에 소개를 부탁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윤 씨는 한 달 동안 8명의 베이비시터를 소개받았다. 베이비시터 업체를 통한 면접도 녹록지 않은 과정이었다. 포털에 노출되는 수십 개의 업체 가운데 어떤 업체가 믿을 만한 곳인지 일일이 인터넷 카페에서 평판을 확인해봐야 했고, 업체가 말하는 ‘베이비 시터 교육’이나 ‘신상 관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 방법은 거의 없었다.

윤 씨는 “그래도 급하니까 면접을 봤는데 업체의 설명과 다른 경우가 많아 당황했다”며 “아기를 키운 경험이 많다고 해서 만났는데 구체적으로 묻자 목욕시키는 법조차 모른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입주 베이비시터를 찾기로 하고 이번엔 지인이 고용 중인 조선족 A 씨를 통해 그의 조선족 친척을 소개받았다. 윤 씨는 “A 씨가 아주 좋은 분이라고 해서 이번엔 성사될 거란 기대가 컸다”며 “하지만 면접을 보는 내내 스마트폰만 보고 돈 얘기만 하는 등 아이에게 전혀 관심을 주지 않을 스타일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믿고 아이를 맡길 만한 이는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 직장맘의 퇴직을 권하는 사회


절망감을 토로하는 윤 씨에게 베이비시터 고용에 성공한 지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같은 시스템에서 베이비시터를 구하려면 ‘눈 딱 감고 50명은 면접 보겠다’는 각오를 해야 해. 그러다 보면 1명 정도는 괜찮은 사람이 있어.”

하지만 윤 씨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결국 윤 씨는 복직 직전 친척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해 가까스로 복직을 할 수 있었다.

윤 씨는 “고비를 겨우 넘기고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친정엄마가 없다면 계속 일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친정 외엔 의지할 곳 없는 보육 시스템을 체험한 지금, 둘째를 낳을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임우선 imsun@donga.com·이샘물 기자
#육아고민#베이비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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